[기자수첩] 겨우 1년 차 밸류업,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

2025-02-25     서은정 기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밸류업 프로그램을 긍정 평가한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국제 경쟁 환경이라는 변수를 제거한 디스카운트 해소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기업거버넌스포럼은 "현실과 동떨어진 자화자찬"이라고 받아쳤다.

물론 은행주의 주가 상승을 근거한 정 이사장의 발언은 틀린 말이 아니다. 금융회사들이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이를 배당 자기주식 매입과 같은 주주 환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가 금융업종 주가 상승 분위기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 이사장처럼 특정 업종의 단기적 성과에 초점을 맞춰 밸류업 정책을 평가하는 게 옳은 걸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해 말 코스피의 PBR은 0.84배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0.94배보다 낮았다"는 기업거버넌스포럼측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 용어 해설 :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

기업의 시장가치와 장부가치를 비교하는 지표인 PBR(Price to Book-value Ratio)은 '주가/주당순자산가치(BPS)'로 구해진다. 주식시장에선 기업의 저평가 또는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로 활용되는데 PBR이 1이면 시장가치와 장부가치가 동일하다는 의미이고 1보다 낮으면 기업이 시장에서 장부가치 이하로 평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밸류업은 주가 상승을 단기간에 견인하는 '마법'이 아니라 기업의 체질을 장기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은행뿐 아니라 실제 한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는 직전 연도에 비해 10조원 넘게 증가했다. 사실상 역대 최대 규모다. 배당 성향 역시 눈에 띄게 상향 조정됐다. 정부가 의도한 정책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는 여전하고 주식 시장은 해외 투자자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에선 상법 382조의 3(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 보호 개념을 넣자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재계와 학계에선 주주 간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주주뿐만 아니라 직원·협력업체·소비자·지역사회 전체를 포괄한다. 주주 역시 △단기 투자자·장기 투자자 △대주주·소액 주주 △기관투자자 △내부 주주·외부 주주 △내국인 주주·외국인 주주 △연기금 △사모펀드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거래소 이사장 2025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정 이사장의 발언은 국제 경쟁 환경이라는 외생 변수를 제거한 평가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 또한 지난 1년간의 정책 평가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전체적인 문제의 본질을 온전히 설명하기엔 부족해 "정 이사장 취임(2024년 1월 15일) 이후 1년간 코스피 지수가 약 3% 하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단순히 지배구조나 주주 환원과 같은 내생 변수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단기 처방으론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글로벌 금융 시장의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국가 브랜드 가치 등 다양한 외생 변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2월 시작한 밸류업 정책은 이제 시작 단계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앞으로 해외 주요 시장과 경쟁하며 한국 증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기업인이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방향 전환도 필요하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밸류업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