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밸류업] ⑦ "韓, 채찍만 있고 당근 없다"···기업가치 높일 해법은 이것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 인터뷰 경영권 방어 수단과 인센티브 정책부터 英, 기업 이탈 막으려 차등의결권 도입

2025-02-28     박소연 기자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한국 증시 저평가 국면의 원인으로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뒷받침할 제도적 지원 부족을 꼽았다. /이상헌 기자

한국 상장기업들의 주가는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당국이 기업 가치 제고를 목표로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 증시는 여전히 저평가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그 원인으로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뒷받침할 제도적 지원 부족을 꼽았다. 일본이 10년 이상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닛케이225 지수를 4만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과 달리 한국은 규제 중심의 접근으로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은 주주환원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기업들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환경 조성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한국의 자본시장 구조는 금융 자본 논리가 산업 자본을 압도하는 형태로 운영되면서 기업들이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펼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전무는 기업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혁신할 수 있도록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세제 인센티브 확대, 규제 완화 등의 종합적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기업의 장기 성장 전략을 지원하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핵심 열쇠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부터 자본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년 돌아보면 상장기업의 주가에는 큰 영향이 없어 보인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책당국이 오랜 기간 한국 증시의 미결 과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코자 일본의 모델을 참고하여 고심 끝에 도입한 방안이다. 일본의 경우 10년 이상 다양한 정책을 통해 현재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여기에는 거시경제적 통화정책, 재정정책을 비롯하여 기업의 경영환경에 직결되는 산업 구조개혁이 포함된다.

또한 정책 추진의 실효성을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첫째로 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 주금을 납입하는 것이 기본 원칙인데 상장회사의 경우 임원에게 보수로서 자사 주식을 제공하는 경우 무상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둘째로 임원이 업무와 관련하여 중과실이 없는 경우 일정 범위내에서 책임을 경감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셋째로 상장회사가 부담하는 실효세율을 낮추고자 성장지향형 법인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의 정책이 지향하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구체적 채찍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에 부합하는 당근 또한 필요하다. 특히 상장회사와 관련한 정책이라면 경영자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역량과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여 혁신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을 이끌 수 있도록 제도적인 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된다. 일본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였기에 성공적 실행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의 제고, 주주환원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 중심으로 밸류업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장회사와 시장참여자를 지원하기 위한 대안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으로 기업의 참여가 저조한 것 같다. 예를 들면 기업들의 자본시장 안정을 지탱할 수 있는 상속세 및 배당소득세 완화라든지 경영권 방어수단의 도입 등 혁신적인 규제개선 지원방안의 도입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진정한 코리아 밸류업으로 나설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6월 26일 금융감독원 후원으로 한국경제인협회 등 재계가 개최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 참가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전문가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일각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현행 수준 이상으로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

"이미 자본시장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각종 규제 방안이 마련되어 있다. 2019년에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으로 이사에 대한 선임 및 보수 규제 등 공시, 2020년 공정경제 3법 개정으로 다중대표소송,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 지주회사 규제 방안 등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증시의 핵심 지표인 주가지수를 살펴보면 당시 3300선까지 상승했으나 현재는 2500선을 간신히 턱걸이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선방안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의 반응은 기대에 못 미치고 오히려 우하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문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졌다는 연결고리는 설명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애초부터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신속히 인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제는 관점을 달리하여 규제 강화에 앞서 기업 성장 지원을 위한 규제 해소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수출주도형 경제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내생변수보다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원자재 가격의 흐름 및 공급망의 여건 등 외생변수에 의해 크게 영향받는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유가나 환율 등의 경제지표는 현실적으로 주어진 결과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마찬가지다. 상장회사만의 노력으로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경쟁력 강화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ㅡ앞의 질의와 연결될 수 있는데 이번 상법 개정 중 핵심 쟁점인 이사의 충실의무(382조의 3)를 주주 보호 차원에서 확대한다고 한다. 또 이런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한결같이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최근 불거져 나온 일부 상장회사의 분할·합병 등 조직개편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이 외면받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주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 논의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치트키’인 듯 이루어지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으로 상장회사의 가치가 제고되고 주가가 상승한다면 이미 상당수의 국가에서 이를 도입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상법에서 명시하는 충실의무는 이사가 회사를 비롯하여 모든 주주에게 충성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이사와 회사 간의 이해가 충돌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이사의 경업금지 △회사의 기회 및 자사의 유용금지 △이사 등과의 회사 간의 거래 규제 등이 있는데 이를 모든 주주에게로 확대하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각에서 문제가 된 분할·합병 등 조직개편시 보다 효과적인 투자자 보호가 필요하다면 맞춤형으로 해결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현실적 문제점에 대해 몇 가지 더 짚을 수 있다. 먼저 이사회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사항이 상법과 표준이사회 규정상 69건에 달하는데 이사의 책임 범위가 모든 주주에게까지 확장되면 빈번한 소송 제기나 관련 비용의 증가로 인하여 적극적 투자나 새로운 사업 진출은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소액주주 보호라는 명목하에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가 거의 없다 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등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상장회사에 해악을 끼지는 집단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17일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ㅡ지속적인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해 금융당국에서는 시장 신뢰를 저해하는 기업이 원활히 퇴출될 수 있도록 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을 만들어 공포했는데 이번에 발표한 내용에 대한 의견은.

"최근 국내 상장회사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19, 3高(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국제분쟁 및 공급망 불안에 이어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으로 관세전쟁과 국수주의 심화로 자금조달의 어려움과 함께 일부 한계기업의 상장폐지 위험은 고조되고 있다. 상장폐지 사유의 현황과 추세를 살펴보면 핵심 요건(시가총액, 매출액, 감사의견 미달 등)을 현실화하는 방안에는 동감한다,

다만 상장회사의 단순 외형상의 지속가능성뿐만 아니라, 실질적 측면에서의 회계·경영투명성에 대해서도 각별히 관심과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코스피 상장회사가 강화되는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되어 증권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 당해 기업의 회계투명성이나 재무건정성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여 코스닥·코넥스 등의 시장으로 유도하는 구체적 방안이라든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거래정지 중 개선계획의 소명을 위한 가이드라인 쳬계 등을 만들어 회생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법도 강구해 볼 수 있다."

ㅡ문제는 금융 및 경쟁당국의 규제 강화 때문에 상장을 회피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실정이다. 해외에도 그러한지 궁금하다.

"실제로 국내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규제 부담이 커지면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쿠팡 또는 비바리퍼블리카 등)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영국은 자국 기업의 해외 상장 증가와 IPO 규모 감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상장 절차를 완화하고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등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투자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의 이탈을 줄이기 위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ㅡ기업의 밸류업 성공을 위해서 개선될 필요가 있는 제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물론 기업 밸류업을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글로벌 기준과 맞지 않는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법령 곳곳에 도사리는 대주주 견제를 위한 3%룰은 오히려 경영권 행사와 방어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주기적 지정감사인 제도는 감사 품질 저하와 비용 부담만 초래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도 시급하다. 2024년 기준으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국내 기업은 77곳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다양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한 상태다.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황금낙하산 등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세제 인센티브도 강화해야 한다. 주주환원 촉진세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지원 확대,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완화 등이 논의됐지만 정치적 이슈로 무산됐다. 이러한 제도가 정착될 때 기업 가치 상승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기업의 가치 제고는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정책당국과 시장 참여자들은 기업이 체질 개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과를 내도록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용어설명 : 감사인 지정제와 3%룰

증권선물위원회가 기업의 감사인을 지정해주는 제도다. 일반 감사인과의 6년 계약 이후에 3년간 국가 지정 감사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새로운 감사인이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회계 처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감사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감사 품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부작용이 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부가 사기업의 감사인 선임에 개입하지 않는 추세다.

3%룰은 먼저 감사(위원)를 선임하거나 해임할 때 대주주는 의결권은 100분의 3으로로 제한하는 규정이다.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 도입된 제도로 당시 국가 재건최고회의에서 진행된 개정 작업에 참가한 서돈각 교수의 저서를 보면 "감사의 기능을 살리기 위하여는 불가피한 입법"이라는 설명이 있다. 연장선에서 1997년에는 증권거래법상 3%룰까지 등장했고 올해 고려아연 사례처럼 감사인 선임 또는 해임과 관련이 없는 집중투표제로의 정관 변경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룰까지 등장했다. 

지난 55년간 일본 니케이225 지수 변화 추이 /그래픽=허아은 기자

ㅡ현재 한국의 주가지수는 십여년째 2500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기업가치와 경쟁력이 동일하다고 볼 때 다른 모든 법적·정책적 요건이 이상적으로 갖춰진다면 한국의 주가지수는 어느 정도가 정상적인 수준일까?

“현재 한국의 주가지수가 2500 수준이라면, 동일한 기업가치와 경쟁력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이상적인 법적·정책적 요건이 갖춰질 경우 주가지수는 두 배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본다.

대만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을 참고하면, 한국 시장이 적절한 환경을 갖춘다면 지금보다 두 배 상승하는 것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보인다. 물론 단순 비교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면 장기간의 정책적 준비와 구조 개선이 필수적이다.

특히 기업이 자발적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규제나 부담으로 작용하면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주가 상승을 원하지만, 현재의 상속세와 같은 제도적 장벽이 오너 경영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10년 이상 준비하면서 기업 경영진이 보다 공격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기업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부담이 크고, 이는 기업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기업 승계를 단순히 가업 승계의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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