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1기 빼고 태양광 메우니 40조원 증발···퇴행한 11차 전기본
야당 공세에 원전 4기→3기 줄여 확정 태양광의 짧은 교체 주기에 부담 가중 전기요금은 해마다 3835억원 이상 늘어
정부가 야당 반대로 당초 계획보다 대형 원전 1기를 줄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확정했다. 원전이 줄어든 공백을 태양광과 ESS(에너지저장장치)로 메우면서 약 40조원이 추가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21일 여성경제신문이 입수한 국회입법조사처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1차 전기본 수정안대로 대형 원전 1기를 취소하는 대신 태양광 설비와 ESS를 지으면 건설·시공비만 6조원이 추가 소요된다.
정부는 지난해 AI(인공지능) 확산 등에 따른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2038년까지 SMR(소형 모듈 원전) 1기를 포함해 원전 4기를 짓겠다는 전기본 초안을 내놨다.
하지만 야당의 논의 거부에 지난해 말이었던 확정 일정을 넘기자 지난달 초 1.4GW(기가와트)급 원전 1기를 계획에서 빼는 대신 태양광 설비 2.4GW와 ESS(에너지저장장치) 32GWh(기가와트시)를 추가하는 수정안을 만들고 협의를 진행했다.
원전 1기 건설비 6조원이 줄어드는 대신, 패널 등 태양광 설비 시공에 2조4000억원, 보조 배터리 역할을 하는 ESS 구축에 9조6000억원 등 총 12조원이 들면서, 결국 6조원이 추가 소요되는 것이다.
날씨가 흐리거나 해가 진 이후에 전기를 만들지 못하는 태양광의 특성상, 원전처럼 전기를 24시간 동안 공급하려면 32GWh에 해당하는 만큼 ESS가 동원돼야 하다 보니 비용이 급증하는 것이다. 게다가 ESS는 1MWh(메가와트시)당 3억원가량 드는 고가 설비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유재국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하루 4시간 정도 가동할 수 있는 태양광 2.4GW 설비로 1.4GW 원전 1기가 24시간 동안 공급하는 전기를 만들려면 4일 넘게 ESS를 채워야 한다”며 “해당 추산치도 마치 야구의 선발투수처럼 4일 충전 후 하루만 가동하는 것을 가정해 나온 최소 규모”라고 말했다.
태양광 20년, ESS 15년인 교체 주기까지 고려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원전의 최초 가동 연한인 60년만 따져도 태양광은 2차례, ESS는 3차례 더 교체해야 해 추가로 33조6000억원 더 든다. 결국 원전 1기 건설 때와 전체 건설·시공비 차이는 40조원에 달하게 된다.
게다가 부지 확보와 송배전 설비 등에 드는 비용까지 전부 합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다. 신한울 3·4호기는 원전 2기에 필요한 136만㎡ 부지를 1500억원을 들여 확보했는데, 태양광 2.4GW를 짓는 데는 약 40배인 2400만㎡가 필요하다.
국민의 전기요금 부담도 매년 3800억원 이상 불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초안대로 원전을 모두 짓고 2039년부터 가동할 때와 달리 태양광으로 대체하면 한전이 전기를 도매로 사는 비용은 연 3265억원가량 불어나고, 국민이 부담할 소매 전기 요금은 해마다 3835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에너지업계 전문가는 “200조원 한전 부채, 값싼 전기 요금, 폭증하는 전력 수요 등 전력시장의 산적한 과제를 고려하면 원전을 줄인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라며 “100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수립해야 할 만큼 중요하고 연속성이 있어야 해 백년대계(百年大計)로 불리는 에너지 정책이 정치권의 힘겨루기 싸움에 희생되고 있는 꼴”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