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공중보행로 존치냐 철거냐···세운상가의 운명

[손웅익의 건축 마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한 초고령 세운상가의 구조

2025-02-24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세운상가 전경 /그림=손웅익

최근에 세운상가의 공중 보행로를 철거하느니 존치하느니 말이 많다. 전임시장의 도시재생 정책의 일환으로 무려 1100억원을 들여 만들어 놓은 구조물을 개통 2년 만에 또 수백억원을 들여 철거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공중 보행로를 설치하기 전에 그 타당성을 주장하고, 검토하고, 승인하고, 실행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1100억원이면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918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1억원씩 저축해야 되는 돈이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인 시설을 몇 년 만에 철거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한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설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 실명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세운상가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 본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교실 뒤쪽에 반 아이들 한 무리가 모여서 밀고 당기면서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호기심에 그 무리를 비집고 들어가서 보게 된 얇은 접이식 사진첩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처음 접한 포르노 잡지였다. 세운상가에 가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날 이후 세운상가에 다녀왔다는 동기들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거기엔 없는 게 없다고 했지만 차마 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학교에 다닐 때 처음 세운상가를 지나가게 되었다. 당시 원서를 구하려고 청계천 책방을 돌곤 했는데 그러다가 세운상가를 지나게 되었다. 거기엔 외국 서적도 많았고, 전자제품점도 많았다. 특히 음반 가게가 많았는데 말로만 듣던 대로 골목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이 그거 구하러 왔냐고 하기에 기겁하고 내뺀 적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포르노 잡지나 비디오테이프도 취급했지만 특히 복제 음반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금지곡이 많았던 70년대 80년대엔 세운상가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지였을 것이다. 대부분 복제 음반이었을 것이지만 저작권법이 시행되기 전이니 불법복제라고 할 수도 없다. 비행기 빼고는 다 만들 수 있고 심지어 총도 구할 수 있다던 세운상가도 용산전자상가가 생기고 저작권법이 1980년대 후반에 시행되면서 서서히 활력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살면서 특별히 세운상가에 갈 일이 없었는데 30대 초반에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고 세운상가에 자주 갈 일이 생겼다. 일산 신도시에 단독주택 설계를 하게 되었는데 건축주가 세운상가에서 작은 음반 가게를 하고 있었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부터 그곳에서 음반 장사를 했다는 것이다. 청계천 막걸릿집에서 디자인 회의를 할 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운상가 이야기와 복제 음반과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건축주가 험한 시절을 어렵게 살면서 번 돈으로 짓는 집이라 더 애정을 쏟았었다.

세운상가 내부 천창과 중정/ 그림=손웅익

요즈음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시니어들과 서울 여기저기를 걸으며 건축과 역사를 해설하고 있다. 그중에 보신각에서 시작해서 YMCA, 삼일빌딩, 청계천을 거쳐 세운상가까지 걷는 여행코스가 있다. 세운상가에 이르면 너나 할 것 없이 세운상가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낡아서 콘크리트가 패인 계단을 올라가서 주거 동 안으로 들어가 본다. 세운상가 주거 동에는 대부분 처음 들어가 본다고 한다. 내부 공간의 특별함에 신기해하고, 특히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몇 개 층이 트여있는 중정 공간에 많이 놀란다.

국내 최초 주상복합 아파트인 세운상가를 건축가 김수근이 35세에 설계했다. 약관의 나이에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만 해도 외국 물 먹고 들어온 건축가 숫자가 적었다는 것과 당대 실세 정치인과의 밀착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다.

세운상가는 김현옥 시장 시절에 지었는데, 세운상가가 준공되고 2년 후인 1970년 4월에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가 일어난다. 와우아파트는 준공된 지 4개월 만에 무너졌고 33명이 사망한 참사였다. 와우아파트 참사로 물러난 김현옥 시장은 안전모에 ‘돌격’이라는 큰 글자를 써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그가 그 시절 얼마나 저돌적으로 공사를 했을지 짐작이 간다.

세운상가는 1968년에 완성되었으니 57년이 경과되었다. 콘크리트의 수명으로는 초고령인 셈이다. 최근에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서 지나가던 상인이 다친 적도 있다. 지금은 세운상가의 공중 보행로를 존치하느냐, 철거하느냐의 논쟁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