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이 감시를 불렀다···학부모 날 세운 대전 초등생 사망 사건
교내 안전 보장 불신, 감시 요구로 이어져 교사들 "공교육 붕괴·교육 활동 위축 우려"
대전 초등학생 사망 사건 이후 교육 현장에 대한 학부모들의 감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1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교사에 의한 초등학생 사망 사건 이후 학부모 사이에서 교실 내 CCTV 설치 요구, 실시간 음성 모니터링 앱 설치 등 감시 강화가 논의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안전을 이유로 감시 강화 조치를 주장하지만 교사들은 교육 활동이 위축되고 공교육의 신뢰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1학년이었던 故 김하늘 양을 교내에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실종 신고 후 딸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앱을 통해 위치를 추적하고 사건 현장의 소리를 일부 들었다고 밝혔다.
사건 이후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생 안전 강화를 위한 감시 시스템 도입 논의가 급격히 확산했다. 데이터 플랫폼 기업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실시간 자녀 위치 추적 및 주변 소리 듣기 기능이 있는 '파인드마이키즈' 앱의 하루 신규 설치 건수가 사건 이전 254건에서 1만7874건으로 70배 증가했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위치뿐만 아니라 교실 내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음성 추적과 더불어 교내 CCTV 의무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교실을 포함한 학교 내 전 구역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법상 학교 시설 내 CCTV 설치는 정보 주체의 동의 또는 법률상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해 교실과 복도 등은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시도교육청 조례에 따라 교문 및 출입구, 사각지대, 사건 사고 다발 지역 등에 CCTV를 필수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사건 사고 다발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CCTV 확대가 교육 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2년 교실 내 CCTV 설치를 검토했으나 시민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학생과 교사의 초상권과 프라이버시권 학생들의 행동 자유권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직 교사들 사이에서도 감시 강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 소재 A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11년 차 교사 B씨(남·36)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교사 입장에서 CCTV 활용이 교육에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면 오히려 교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CCTV가 부분적으로 녹화되거나 특정 장면만 편파적으로 사용될 경우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교사의 교육 활동을 위축시키고 학생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시간 음성 모니터링과 녹취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B씨는 "소리만으로 정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러한 설치가 오히려 교육 활동을 위축시키고 결국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부모들의 감시는 최근 몇 년 새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2023년에는 주호민 웹툰 작가가 특수학급에 다니는 초등학생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킨 후 무단 녹음된 내용을 토대로 특수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2월 재판부는 1심에서 이 사건 쟁점이었던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교원단체들은 1심 선고 후 교실이 불법 녹음의 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며 "1심에서 고소인 측의 불법 녹음 자료가 법적 증거로서 인정받았다는 점이 교사들에게는 가장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18일 특수교사 사건 2심 선고가 예정된 가운데 유죄가 확정될 경우 ‘교실 녹취’가 정당화되는 판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사들이 감시 강화를 특히 우려하는 이유는 학부모들의 태도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C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30년 차 교사 D씨(여·54)는 여성경제신문에 "과거와 달리 요즘 학부모들은 학교를 교육 기관이라기보다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며 "예전에는 학교와 가정이 협력해 학생 인성 교육을 담당했다면 이제는 전적으로 학교에 돌봄과 보육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교사의 업무 부담이 커지고 학부모와의 갈등도 증가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의 고학력화와 개인주의적 문화 변화도 교사들이 감시 강화를 우려하는 원인 중 하나다. D씨는 "과거 교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은 교사 전체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며 "억울함을 참지 않고 곧바로 민원을 제기하는 문화에서 자란 세대이기에 아이 문제에서도 객관적 정황보다 ‘우리 아이 보호’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SNS의 발달 역시 영향을 미쳤다. 그는 "SNS를 통해 교사의 사생활이 노출되며 학부모와 교사의 경계가 흐려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감시까지 강화된다면 공교육과 교사에 대한 신뢰가 더욱 악화하고 교육 환경은 점점 위축될 것"이라고 했다.
일선 교사들은 이들이 교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D씨는 "학교 차원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기 때문에 교사 자질 함양과 교육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학부모들도 교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