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이 더봄] 내가 만들었던 연과 아이의 상상력이 만나
[최진이의 아취 단상(雅趣 斷想)] 2월의 사물, 연 불어오는 바람에 기꺼이 몸을 맡긴 액막이 연의 이야기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었을까.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단발머리의 여자아이는 머리띠를 했다. 긴바지 긴팔 차림이지만 두꺼운 겉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장갑을 낀 거 보면 바람이 꽤나 차가운, 겨울에 가까운 봄 또는 가을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의 배경은 아파트 옥상. 마당이 있던 주택에서 7살에 이사 온 이래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쭉 살았던, 아이에게는 마음속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엘리베이터가 없던 5층짜리 아파트이다. 요즘같이 고층아파트가 많은 시대에는 아파트 옥상 출입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만 아이가 사진에 찍힌 시절에는 옥상 출입이 어렵지 않았다.
아이는 친구들과 종종 올라가 옥상에서 소꿉장난을 하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찔한 높이감을 즐기기도 하고 앞과 뒤, 옆으로 늘어선 5층 아파트 단지(라고 하기엔 지금의 아파트 단지에 비해 왜소하지만) 너머의 건물이나 산을 바라보며 어린 마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곳에서 아이는 장갑을 낀 손에 자기 상체만 한 하얀색 가오리연을 들고 있다. 햇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지만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에서 배어 나오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보니 아마도 연을 직접 만든 모양이다.
이날에 대한 기억은 아쉽게도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부모님 침실 한편에 늘 놓여있던 이 사진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만든 연을 날려본 적이 있다’고 늘 알고 있었다. 2025년 2월의 사물인 연을 그릴 때에도, 아니 연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 사진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연을 날리는 방법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연이나 실이 걸리지 않을 만큼 넓은 들판이나 공터로 나가 한 손에는 연을, 한 손에는 얼레를 잡고 달리다가 연을 슬쩍 놓아주면서 바람을 따라 부유할 수 있게 얼레에 감겨있는 실을 풀어가며 더 높은 하늘로 띄운다.
이 놀이는 바람이 센 12월에도 많이 했지만 정초에 세배 돌기가 끝난 이후부터 새해 첫 번째 보름달이 뜨던 정월대보름 며칠 전까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보름이 지나면 농사 준비를 시작했으므로 정월대보름에 날렸던 연은 옛사람들이 가장 막아내고 싶어 했던 액(厄, 모질고 사나운 운수)을 실어 멀리 날려 보내고 복을 기원하는 새해의 마지막 놀이였겠지 싶다.
한국의 전통 사물들을 2025년 달력에 담아 ‘아취(雅趣, 고아한 정취 또는 그런 취미)’라는 단어로 묶는 작업을 준비하면서 자료조사를 위해 다녀왔던 서울의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나쁜 기운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뜻의 송액영신(送厄迎新)이라는 글귀가 쓰인 연을 만날 수 있었다.
한지에 별다른 무늬나 그림 없이 한자만 쓰인, 꼬리가 두 개 붙은 방패연이 꽤나 담백해서 마음에 들었다. 재앙을 없애고 복을 부르는 제화초복(除禍招福) 의미를 담아 액막이 연에 담아 연 위에 어린이의 이름이나 사주, 주소를 적어서 연줄을 끊어 멀리 날려 보냈고,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아무도 그것을 줍지 않았다고 한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꺼이 몸을 맡기고 자신의 운명을 따라 날아가는 액막이 연을 날렸던 사람들은 연을 날리는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을 때리기도 하고 뒷목을 아파 잡기도 하며 잠시나마 설레었을지 모르겠다.
손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이 날아가는 연에 나를 슬쩍 올려 같이 날려보기도 하고, 연줄이 끊어질 때 아쉬우면서도 왠지 모를 통쾌함에 잠시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놀이였지만 분명 어른들도 즐거웠을 것이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연에 실어 날려 보냈을지도 모르니···.
민속박물관에서 보았던 액막이 연의 담백함이 마음에 들어 레터프레스(letterpress printing, 활판인쇄)로 찍을 밑그림을 그렸는데 이걸 보고 첫째 아이가 자기도 연을 그리고 싶다더니 슥슥 연을 그려 내게 보여주었다. 좋아하는 색을 잔뜩 골라 색색이 칠한 연이 떠있는 아이의 그림을 보는 순간 ‘아, 예쁘다’하고 감탄했다.
레터프레스 인쇄는 판화의 일종이기 때문에 그림에 들어가는 색이 많아질수록 작업량이 많아지고 인쇄 오류가 날 확률도 높아지겠지만 하늘에 떠 있을 알록달록한 아이의 연을 상상해 보니 담백한 무채색의 연보다 더 아름다울 것 같았다.
역시나 2월 달력을 찍으면서 여러 색이 들어가니 원하는 색을 구현하기 위해 잉크를 섞고 만들어내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색으로 정확하게 인쇄 핀을 맞춰 찍다 보니 애도 먹었다. 하지만 2월의 연에 그만큼 생동감이 더해진 것도 사실이다.
내가 어린 시절 만들었던 가오리연은 민속박물관에서 담백한 액막이 연을 만날 수 있게 이끌어주었을 것이고, 내 아이의 상상력은 나에게 다채로운 연을 찍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2월의 숙제는 아이와 함께 연을 만들어 날리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과 기원을 담아 저 높은 하늘로.
그 연은 훗날 어떤 모습으로 아이와 함께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