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마디 더봄] 교토, 아줌마 밴드 : 들어가다

[윤마디의 유니폼] 주방 한편에서 아이를 키워낸 엄마들이 이제는 가장 밝은 색이 되어 무채색의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

2025-02-14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

(지난 회에서 이어짐)

여행은 이어져서 도쿄에서 교토로 넘어왔다. 이때부터는 모두 한 호텔에 묵게 돼서 매일 아침 10시쯤 호텔 로비에서 만나 첫 일정부터 같이 하기로 했다. 나는 아침을 꼭 챙겨 먹는 한국인이지만 파리에 사는 이집트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10시가 되면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노트북 켜고 일한 터라 이미 네다섯 시간이 지나 있어서 허기가 졌다.

로비로 하나둘 나오는 친구들에게 "잘 잤어? 아침 먹었어?"라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 "안 먹었지!" 그리고 호텔을 나가서 아침이라고 먹는 거라곤 라테 한 잔. "이게 아침이야?" 나는 매번 놀란 얼굴을 했고 친구들은 오히려 매일 아침 인사로 밥 먹었냐고 묻는 나를 자상하다고 했다. 우린 “아침 먹었어?”가 인사인데. 한국인의 밥 사랑이란!

출처=나무위키

교토의 우중충한 초겨울. 솜 패딩 사이로 습기가 스며든다. 그날은 한 명이 일찍 산책하러 나가 다른 동네까지 가 있다고 해서 나와 두 명의 친구만 모여서 파리지앵 아침을 먹기 위해 블루보틀을 찾았다. 돌벽 사이를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따라 다카세 강둑을 걸었다. 걷다가 오른쪽으로 난 작은 다리를 건너면 블루보틀이라고 나온다.

게이트를 대신하는 낮고 어두운 회색 지붕 아래로 들어가면 눈앞에 가로로 길게 트인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밭 뒤로는 가로세로 직선만으로 그려진 기교라고는 없는 베이지색 건물과 그 앞에 어두운 지붕의 긴 회랑이 대학 건물 같기도, 관공서 건물 같기도 하다. 그 앞 반듯한 직사각형의 잔디밭 주위를 1층 높이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건물이 뜰을 감싸안고 있는 듯했다.

그 안뜰에 오늘 행사가 있나 보다. 음향 장비를 옮기는 사람들,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초겨울 안개가 스며든 안뜰이 잔잔하게 들떠있다. 우리는 뜰을 가로질러 1층 블루보틀로 들어갔다.

블루보틀 커피 교토 키야마치 카페 /출처=구글 스트리트뷰

블루보틀에서 이게 파리지앵 스타일이라며 다 같이 라테 한 잔을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갓 구운 와플을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사이 행사 시간이 다가왔나 보다. 우리가 잔디밭을 빠져나갈 때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한쪽에서 한 줄로 길게 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여성들.

오늘 주민 합주회 같은 걸 하는 걸까? 산뜻한 핑크색 카디건을 입고 우쿨렐레를 하나씩 멘 채. 우중충한 겨울 하늘과 탁한 노란색 건물, 풀이 죽은 녹색 잔디밭 사이로 흘러드는 한 줄기 산뜻한 핑크색. 친구가 언젠가 물었었다. "일본 아줌마들은 왜 다 단발머리야?" 한국 아줌마의 뽀글머리처럼 일본 아줌마는 단발머리인가.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얼마 전, 슈카월드 유튜브에서 젊은 일본 부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도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 대부분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에 집중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요. 가족을 꾸려가려면." 담담하게 말하는 젊은 부부의 태도가 슈카는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경력 단절을 인생의 손해로 받아들이기보다 가족을 선택한 삶으로 받아들이는 시선. 물론 일본에서도 여성의 경력 단절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점이 내게는 새삼스러웠다.

나는 육아를 안 해봤지만 주위만 둘러봐도 육아와 사회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중에서도 일본에는 한국과 다른 문화가 하나 있다. 일본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는 어린이용 ‘예쁜 도시락’이다. 금손 엄마가 아침마다 직접 만드는 형형색색의 반찬과 캐릭터 모양의 장식이 들어간 수제 도시락. 존경과 선망의 댓글이 가득한 도시락이 육아에 만만찮은 부담이 될 거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대부분 급식을 하지만 고등학교는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어서 급식을 진행하는 경우가 드물다. 2021년 6월 <일본어 저널>에 실린 고등학생 약 1000명의 점심 설문조사를 보면 90%의 학생이 도시락을 싸 온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도시락 문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일본 영화 <461개의 도시락>에는 아버지의 도시락이 나온다. 주인공 코우키는 부모님의 이혼 후 뮤지션 아빠와 단둘이 살게 된다. 충격 때문인지 고등학교 시험에 낙방하고 1년을 꿇은 뒤 간신히 들어간 학교에서도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이를 본 아빠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매일 도시락을 싸 줄 테니, 너도 매일 학교에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시작된 아빠의 응원 도시락. 술을 마셔도, 밤을 새워도, 아빠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주방을 분주하게 오가며 갓 지은 밥과 정성스러운 반찬을 도시락에 담는다. 영화에서는 학생들 일부만 부모가 싸준 도시락을 가져오고 많은 학생이 편의점에서 사 먹긴 해도 모두가 코우키의 도시락을 부러워하고 그 도시락으로 외톨이었던 코우키가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하는 걸 보면 도시락의 위상이란 대단한 것이다.

아빠의 대사를 보면 아침밥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일은 또 뭘 싸야 하지?" "아아, 방학이 원래 이렇게 빨리 끝나는 거야?!"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그렇게, 주방 한편에서 아이를 키워낸 엄마들이 이제는 가장 밝은 색이 되어 무채색의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 주방 한편에서 아이들을 다 키워낸 엄마들이 이제는 잰걸음으로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 긴장했는지 우쿨렐레 목을 꽉 쥔 단발머리 아줌마들. 뒤돌아 나오고 나서는 그들의 연주가 두고두고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