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독약’ 美 환자들이 마신다···병원·제약업계 초비상
中 의약품 10% 관세, 美 병원·제약사 반발 항생제도 영향권, 의약품 가격 폭등 현실화 “자국 생산”···트럼프 ‘의약품 전쟁’ 논란
2025년 새해를 맞이한 미국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는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 환자를 위한 항생제가 바닥나 의료진이 대체 약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약이 최근 몇 주 사이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특히 중국에서 수입하던 원료의약품 가격이 급등해 제네릭(복제약) 의약품 공급이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산 의약품에 대한 10% 관세 부과 조치가 현실화하면서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병원은 관세가 의약품 부족을 심화시키고 결국 환자들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네릭(복제약) 기업들도 생산 원가 상승으로 인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4일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한 달 유예됐지만 제약업계는 이번 조치가 미국의 의약품 공급망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병원협회(AHA)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국에서 수입되는 원료의약품이 미국 병원에서 쓰이는 핵심 치료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관세가 현실화되면 암 치료제, 심장병 치료제는 물론, 항생제인 아목시실린 같은 필수 약품까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원료의약품 30%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병원에서 쓰이는 일회용 마스크의 33%, 의료용 비닐장갑의 대부분도 중국산이다. 이에 따라 미국 내 병원들은 의료 비용 상승과 재정적 압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994년 체결된 세계무역기구(WTO) 의약품 협정에 따라 의약품 및 원료의약품에 대한 모든 관세를 철폐한 바 있다. 협정에 따라 미국, EU, 일본, 캐나다 등 주요국은 7000개 이상의 제약 활성 성분 및 화학 성분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관세 조치를 강행하면 3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의약품 면세 원칙'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제약협회(PhRMA)는 "새로운 제약 공장을 건설하고 미국 규제 기준을 충족하려면 5~10년이 걸릴 수 있다"면서 "당장 중국산 원료에 대한 대체 공급망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국 제약산업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운영된다. 케미컬(화학) 의약품의 경우 중국과 인도에서 저렴한 원료를 수입해 완제의약품을 생산하며 바이오의약품은 자체적으로 생산하거나 유럽에서 수입해 판매한다. 때문에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업계는 중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관세가 가격 인상과 공급 부족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 로비 단체인 접근가능의약품협회(AAM)는 "제네릭 업계는 원래도 낮은 마진으로 운영되는데, 추가 관세까지 부과되면 생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결국 환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편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은 중국보다 유럽을 향한 무역 장벽을 더 우려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유럽에서 생산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어 추가 관세 조치가 바이오의약품 업계에도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의약품이 면세 혜택을 받아왔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전방위적 관세 정책을 펼칠 경우 한국 바이오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현재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무관세로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이번 관세 조치가 확대되면 시장 상황이 급변할 것"이라며 "특히 원료의약품을 중국에 의존하는 기업들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