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 정도에 비례한 보상' 삼성화재 첫 도전··손해사정 '패스'가 핵심
국제선 출발 지연 시간 비례해 보험금 산정 지수형 상품, 산정 절차 간편해 해외서 인기 지급 기준 마련에 신빙성 데이터 확보 필수
삼성화재가 국내 최초로 지수형 항공기 지연 특약을 출시했다. 항공기 출발이 늦어지거나 결항 시 별도의 손해 사정 절차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실손 보장형 상품에 비해 피해 보상 절차가 간편하나 지수형 보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화재는 항공기 지연 시간에 따라 정액형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출국 항공기 지연·결항 보상(지수형) 특약'을 출시했다. 현재 대부분의 손해보험사는 여행자보험 상품에 항공기 지연 시 사용 금액에 대해 보상받는 특약을 판매 중이지만 지연된 시간에 비례해 보험금이 책정되는 형식의 특약을 취급하는 것은 삼성화재가 최초다.
해당 특약은 국내공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여객기가 결항 또는 2시간 이상 출발 지연될 경우 그 시간에 비례해 최대 10만원까지 보험금을 지급한다. 삼성화재는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제공하는 공공데이터와 연동해 항공기가 지연 또는 결항될 때 고객에게 알림톡을 발송한다. 가입 고객은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지연된 항공편 탑승권 사진만 업로드해도 보험금을 지급받는다.
지수형 보험은 사고 발생 시 실제 피해 금액과 관계없이 사전에 정해진 기준(지수)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권순일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수형 보험은 보장기준의 객관성, 보험금 지급의 적시성, 상품설계의 유연성 등 장점을 갖춤에 따라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32년 393억 달러까지 연평균 11.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발맞춰 보험개발원은 신규 지수형 상품 개발 및 기존 상품의 보장 범위를 개선할 예정이다. 지난 5일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신년 간담회에서 "홍수와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의 경우 손해 조사에서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은 도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피해 정도에 따른 보험금 산정 방식이 아닌) '강우량 얼마면 보험금 얼마' 하는 식으로 상품을 개발해서 제공하겠다"고 했다.
NH농협손해보험이 재해로 인한 피해로부터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판매하고 있는 농작물재해보험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 질적인 피해액을 조사하고 이를 보상하는 '실손 보장형' 상품이다. 따라서 피해를 평가하는 손해사정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평균 피해율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에 보험가입자의 효용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본과 미국 등 국가에서는 기후이변 또는 재해가 발생할 시 손해사정 과정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일본의 솜포재팬은 태양광 발전 업체를 대상으로 일조 시간 변동에 따른 발전량 감소 시 손실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보상하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진이 잦은 일본은 이에 대비하는 지수형 상품도 개발했다.
도쿄해상의 '이퀵(EQuick)' 보험과 솜포재팬의 '라인(LINE)' 보험이 대표적이다. 라인 보험의 경우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1만 엔(한화 약 8만7000원)의 보험금을 지급한다. 연간 보험료는 500엔(한화 약 4370원) 정도로 저렴하다.
미국의 보험사 AIG 등은 가뭄이나 홍수로부터 농민의 피해를 보상한다. 뮌헨재보험과 스위스리재보험 등 기후 변화 대응 재보험을 활발히 취급하는 보험사도 있다.
한국 역시 기후 이변으로 인해 지수형 보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기존 제도 아래에서는 확산이 쉽지 않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금 지급을 위해 '실제 손해액'을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사전 지표만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보험이 법적 정의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
보험업계는 지수형 보험 활성화를 위해 금융당국이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보험의 정의를 기존 '실제 손해액 보상'에서 '사전에 정해진 기준에 따른 지급'으로 확대해야 다양한 지수형 보험이 자유롭게 출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수형 보험이 지나치게 단순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소비자 보호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같은 항공편을 이용했더라도 승객마다 겪는 불편함이 다를 수 있으며 기후 관련 지수형 보험의 경우 특정 지표가 충족되었더라도 개별 농가나 기업의 피해 수준이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 절차를 효율화하고 부당 수취를 막기 위해서는 공공데이터 활용 범위를 넓히고 신뢰성을 검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본지에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