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오요안나' 막는 길은···프리랜서 노동자 보호 입법 필요
직장 내 괴롭힘 사각지대 근로자성 인정 여부 쟁점 국회 일하는 사람법 계류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는 논란이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고인은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어 관련 입법이 진전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주영·장철민·이용우 의원 대표로 발의된 '일하는 사람 기본법' 3건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법안은 계약의 명칭·형식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을 일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사업자의 서면계약 체결·교부 의무, 부당해지 제한 등의 내용을 담았다. 사업자에 산업안전보건 의무와 성희롱·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및 예방 의무 등도 부여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엔 험로가 예상된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안은 지난 2023년 21대 국회에서도 이은주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로 있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오씨 사망 사건의 쟁점은 ‘근로자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다. 오씨는 2021년 5월 MBC 공채 기상캐스터로 입사했지만 계약 형태는 프리랜서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 오씨의 근로자성 여부 검토에 나선다고 밝혔다.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는 예술인 산업재해보상보험 임의가입 대상인데 오씨는 예술인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이용우 의원안은 모든 프리랜서에 적용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산재보험법, 고용보험법 등에 따른 산재보험, 고용보험에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국회 환노위 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산재보험법 또는 고용보험법에 따라 구체적인 급여의 산정 기준 등이 정해질 필요가 있다"며 "이에 수반하여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에서 보험료의 산정‧징수‧부과 등의 기준 및 절차 등이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볼 것"이라고 의견을 표했다.
또한 이 의원 안은 "일하는 사람은 일터에서 모든 괴롭힘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제정안에 따른 ‘괴롭힘’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점,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에 따른 정의일지라도 해당 법상 ‘괴롭힘’ 판단 지표인 ‘직장 내 지위 이용’ 등을 근로계약 관계가 아닌 ‘일하는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있다며 "근로계약이 아닌 경우에는 사업자에게 징계, 배치전환 등의 권한이 없어 조치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국민의힘은 포괄적으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약자로 규정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노동약자지원법을 추진했다. 임이자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노동약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공정하게 체결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그 사용을 권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노동약자가 계약 관련 분쟁 발생 시 이를 신속히 해결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며 노동약자가 질병, 상해, 실업 등 위기 상황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공제회 설치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해당 법은 지난달 2일 환노위에 회부된 후 계류 중이다.
오씨 유족은 고인의 출·퇴근 관리가 있었고 기상캐스터들이 소속된 과학기상팀에 선후배 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씨가 보도국 간부로부터 대본을 검토받았으며 승인된 내용을 토대로 방송을 한 '무늬만 프리랜서'라고 강조했다. 유족 측 주장대로 MBC의 업무 지휘·감독을 받았다는 점 등이 확인된다면 노동자로 인정되고 일반 산재보험 소급가입도 가능하다.
실제로 과거 프리랜서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에 대한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도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4년여간 KBS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다 계약이 만료된 아나운서 이모 씨에 대한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같은 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UBC울산방송에서 프리랜서로 기상캐스터와 아나운서 등의 일을 한 이모 씨를 정규직 노동자로 인정했다. 2022년에는 서울행정법원이 MBC에서 약 10년 동안 일해온 방송작가들을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한 2021년 12월 30일 고용노동부는 KBS, MBC, SBS 등 국내 지상파 방송 3사가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작가 2명 중 1명은 사실상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오요안나씨는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으며 3개월 만에 부고가 알려졌다. 고인 휴대폰에선 원고지 17장 분량 유서가 발견됐으며 동료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족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해자로 지목된 A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MBC는 논란이 확산하자 오씨 사망 4개월 만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노동법상 보호를 강화하는 일이 정규직 범주 내에 편입된 소수의 형편 나은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게 되어 노동시장 내 양극화만 부추기게 될 것"이라며 "우리 당 소속 환노위와 과방위 위원들을 포함하여 당 언론특위에 구조적 대책 마련을 함께 연구해주십사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직장에서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한 직원이 회사에 구조요청을 했을 때 회사가 이를 묵살한다면 직원은 도대체 어디에,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라며 "회사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상급자들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