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AI 동맹 본격화···이재용까지 뛰어든 '공급망' 전선
이재용·최태원, 손정의·올트먼 회동 TSMC와 더 가까운 '젠슨 황'이 변수 사법리스크 떨친 이재용 회장에게 엔비디아 관계 강화는 여전히 숙제
한·미·일 간 인공지능(AI) 협력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초청해 3자 회동을 가진 데 이어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샘 올트먼과 별도로 만남을 가지면서다.
5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 연쇄 회동은 AI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 시장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술 동맹이 구체화하는 신호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AI 생태계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 전략이 가속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회장과 손 회장, 샘 올트먼 CEO는 AI 반도체 및 클라우드 컴퓨팅과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 등 폭넓은 주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2심에서 무죄를 받으며 새로운 전기를 맞은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중 하나로 AI 칩 개발과 생산 능력을 갖춘 핵심 플레이어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삼성전자의 최근 실적이 예상치를 하회하며 엔비디아와의 관계 강화가 숙제로 남았다. 재계에선 내달 중 이 회장과 젠슨 황 CEO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5세대 HBM인 HBM3E의 8단 제품이 지난해 말 엔비디아의 퀄테스트(품질검증)를 통과했으나 아직 HBM3E 12단 제품은 퀄테스트를 받고 있다. 업계에선 이 절차를 넘어야 향후 6세대 HBM4 공급도 논의해볼 수 있다고 본다.
젠슨 황 CEO는 삼성전자보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와 더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타이베이 중앙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시절 미리 면담을 가진 그는 취임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웨이저자 TSMC 회장을 비롯한 협력 업체 수장 35명과 식사를 나누는 등 친(親) 대만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 발 딥시크 쇼크 이후인 지난달 31일엔 저사양 반도체의 중국 수출까지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비공개 면담도 가졌다.
이번에 한·미·일 가교 역할에 나선 손정의 회장은 일본 기업 문화에서 비주류로 평가받았지만 2016년 비전펀드를 조성한 이후 세계 첨단 기술 투자에 꾸준히 나서며 입지를 다졌다. 그는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각국 주요 인사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인물로도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이뤄진 면담 역시 이러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전펀드를 통해 확보한 ‘레버리지의 힘’이 실리콘밸리 대형 벤처캐피털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으며 오픈AI는 생성형 AI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이들의 협력이 강화될 경우 AI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어진 최태원 회장과 올트먼 CEO의 만남 역시 주목된다. SK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및 배터리 등 AI 인프라 전반에 걸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반도체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주요 공급사로 오픈AI의 대규모 연산 인프라 확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편 이번 협력 구도가 대만과 연결될 경우 ‘한·미·일·대만’ 블록이 형성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인 TSMC와 삼성전자가 경쟁 구도를 이루며 미국 및 일본과 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AI 궐기를 겨냥한 동아시아 중심의 첨단 기술 블록이 형성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딥시크의 등장과 함께 향후 AI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중국 견제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라며 "이번 연쇄 회동은 단순한 협력 논의를 넘어 글로벌 주도권 다툼에서 한국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