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대란, 현역 선호 가속···국방부 훈령 개정이 불러온 여파
복무 기간·근무 환경 개선 요구 늘어 정부 훈령 개정에 의료계 반발 확산
"36개월 동안 시골에서 의료 공백을 메우는 것보다 차라리 18개월 현역을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 전공의의 말이다. 최근 국방부의 '의무·수의 장교의 선발 및 입영 등에 관한 훈령' 개정안이 발표된 이후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지원 기피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방부는 지난달 15일 훈령 개정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은 의무장교 선발대상자 중 초과 인원을 ‘현역 미선발자’로 분류해 입영을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 전공의로 퇴직한 의무사관후보생이라도 국방부의 결정에 따라 입영이 최대 4년까지 연기될 가능성이 생겼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두고 "입영 시기를 정부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공보의 선발 인원 축소와 맞물려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병무청은 올해 공보의로 선발할 의과 인원을 지난해보다 392명 줄어든 250명으로 확정했다. 반면 오는 4월 전역할 공보의는 512명에 달한다. 신규 선발 인원이 전역 인원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지역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공보의 지원을 기피하고 차라리 현역으로 가려는 의료인이 늘어나고 있다. 전공의는 원칙적으로 일반병 입대를 선택할 수 없지만, 공보의 직무교육에 고의로 불참할 경우 현행법상 신분이 박탈된다는 점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병역법 제35조에 따르면 ‘농어촌의료법’ 제9조의2에 따라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교육명령에 불응할 경우 공보의 신분이 박탈된다. 이에 따라 공보의 신분을 포기하고 현역으로 입대하는 편법이 등장했다.
실제로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에 따르면, 직무교육 불참으로 인해 공보의 신분이 박탈된 사례는 2023년 1명, 2024년 4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방부 훈령 개정 이후 이를 택하는 사례가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의대생들의 현역 입대도 증가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실이 병무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현역 입대한 의대생 수는 123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48명) 대비 5배 증가했다.
대공협 관계자는 "현재는 공보의 직무교육 불참 사례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일단 한 번 터지면 이전보다 10~20배는 폭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료계는 국방부 훈령 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대공협은 공보의 복무 기간이 현역(18개월)보다 2배 긴 36개월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단축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공보의 배치 방식이 비효율적이라 불필요한 순회 진료로 인력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이번 개정안이 "국민의 병역의무 이행 시기와 형태를 선택할 권리를 사실상 박탈하는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또한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 없이 입영 정책만 수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