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FEEL思)] 이렇게 계속 글 써도 될까?
[최영은의 필사(FEEL思)] 목표 의식 부재한 글쓰기 괜찮은걸까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쓰는 이유 삶의 환기와도 같은 행위를 지속하다
책에서 읽은 것을 잃지 않고자 필사합니다.
책 속에서 제가 느낀 감정(feel)과 생각(思)을 여러분께 전달합니다.
<무한화서>이성복, 문학과지성사, 2015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메멘토, 2015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돌베개, 2021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네이버 뉴스스탠드(네이버 제휴 언론사 등급 중 두 번째 문턱) 승격을 위한 준비가 한창일 때였다. 뉴스스탠드에 들어가려면 정성 평가를 통과해야 했고 그에 맞춰 기자 코너도 신설됐다.
디지털 팀이지만 명함에는 기자라고 쓰여있는 내게 상사는 기자 코너를 하나 맡으라고 했다. ‘한 번도 기사 쓰기 수업도 받지 않았는데 감히’라는 생각에 못 하겠다고 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언론사 품격이 블로그 수준으로 떨어질 겁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상사는 완고했다. “안돼. 너도 해야 해.” 울며 겨자 먹기 궁여지책으로 찾은 것은 서평이었다. 상사는 곧바로 예시를 보여줬다. 교수님 서평 수준이었던 깊은 해석의 기사였다. 못 하겠다고 다시 말했지만 하라고 했다.
그래서 간단한 책 리뷰를 쓰기로 했다. 백수 시절 그나마 읽었던 책을 항상 필사했었고 노트 한 권을 꽉 채울 정도는 되었으니 소스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형식은 작가 은유의 <쓰기의 말들>에서 따오고 소개 글은 광고 기획자 박웅현의 것을 가져왔다. 책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쓰고 개인의 경험을 붙여 쓰는 글이었다.
처음엔 못 하겠다고 고사했지만 어느새 이렇게 라면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써 내려갔다. 국문학도라는 자부심도 곁들였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신파적 요소에 자기연민을 곁들인 짬뽕이었다. 게다가 얕은 시선으로 삶을 평가하고 있었다. 사유의 폭이 좁을 뿐 더러 현학적인 문장이 멋져 보인다며 관념적인 표현만 남발하고 있었더랬다.
아뿔싸. 오만하기가 그지없었던 것이었다. 때마침 글감도 떨어졌다. 피상적으로 겉핥기만 하다가 밑천이 드러난 것이다. 독자들도 외면했고 낮은 조회수로 드러났다. 머리 속에는 ‘계속 써도 될까?’라는 생각이 가득 찼다.
작가 유홍준 선생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지 말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고 하셨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딱히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켜서 하는 일이었고 쓰다 보니 재미있었다. 재미를 넘어서는 글을 통해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만의 언어를 찾고 싶었고 나를 설명할 말을 찾고 싶었다. 어쩌면 자의식 과잉이 불러온 참사일 수도 있겠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다시 생각해 보니 스스로 성찰하고 풀어가기 위해서였다. 글은 언제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관점을 돌아보게 했다. 20대 시절에는 멘토를 찾아 헤맸는데 이제는 더 이상 찾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글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었고 부족한 나를 발견하곤 했다. 셀프 피드백을 글로 하고 있었다.
작가 은유는 목표 의식이 확고했다. 그는 가볍지 않았고 투철한 작가 의식을 가졌다. 그에 비해 나는 자기 정당성 확보의 글쓰기였다. 잠시 위안받고 산뜻하게 일상으로 복귀하고는 했다. 회사 업무를 보다가 지칠 때면 필사 기자 코너 연재 계획 엑셀 파일을 열어 잠시 키보드를 두들기고 다시 업무를 보곤 했다. 머리 아플 때 잠시 창문을 열어두는 환기와 같은 행위였다.
환기를 하지 않으면 두통이 생겨 일상생활을 힘들어하는 만성 비염 환자인 나는 어쩌면 환기의 글쓰기 없이는 생활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글쓰기 없이 살기란 가능하지만 매우 불편한 상태. 잠시 기자 코너를 휴재했던 동안에 리포트 과제를 미뤄둔 대학생처럼 마음 한 켠이 찜찜했다. 거창한 목표 의식은 없더라도 내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글쓰기를 가볍게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부족한 글쓰기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써보자고.
물론 부족한 글은 그 누구에게도 감응을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살포시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아직은 설익은 글이기에. 완벽할 순 없지만 글을 완성했다는 것에 자기 위안을 해본다.
질문 자체가 답이라는 말. 시인 이성복의 말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을 기록해 가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어쩌면 글쓰기는 답답하고 불투명한 삶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며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덤불 속을 헤치고 다니는 과정이 아닐까?
짧은 생각의 결과 서툰 답을 써놓아서 누군가에게 어쭙잖은 글이라며 핀잔과 반론을 듣고는 생채기가 날 수도 있지만 ‘틀려도 좋다. 내 생각을 말하자’는 20대 시절의 메모를 실천하려 한다. 메모를 실천하는 데만 10년은 족히 걸렸으니 글을 잘 쓰기 위해서도 10년은 걸릴 것이라며.
미숙할지라도 생각과 감정을 함께 나누자는 필사 코너의 목표를 상기한다. 단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말자고.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쓰자고 약속하며 필사 기자 코너 글쓰기만큼은 써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