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美 때린 스푸트니크 쇼크···25년엔 '딥시크' 쓰나미 덮쳤다

'딥시크 쇼크’ 흔들리는 AI 패권 AI 거품 논란과 금리 동결 여파 중국, 오픈AI 데이터 도용 의혹 마이크로소프트·정부 조사 착수

2025-01-30     김현우 기자
1957년 10월4일 구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사진은 스푸트니크 1호. /미국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

1957년 10월 4일, 한 개의 작은 금속구가 지구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직경 58cm, 무게 83.6kg에 불과한 이 위성은 냉전 시대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것은 바로 소련이 세계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였다. 당시 미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예상치 못한 소련의 한 방에 자존심이 무너졌다. 이후 미국은 NASA를 설립하고 대규모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돌입하며 패권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2025년, AI 시장에서 또 한 번의 ‘스푸트니크 모멘트’가 터졌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단 6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예산과 저사양 반도체만으로 미국 최상위 생성형 AI 수준의 모델 ‘딥시크 R1’을 공개했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AI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패닉에 빠졌다.

AI 패권을 둘러싼 기존의 공식이 무너진 순간, 시장은 요동쳤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폭락했고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딥시크가 오픈AI의 데이터를 무단 도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조사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곧바로 AI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를 검토하며 대응에 나섰다. 

딥시크와 챗GPT 아이콘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의 파격적인 등장으로 글로벌 인공지능(AI) 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장악해온 AI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오픈AI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 동결 결정과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경제 정책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글로벌 증시는 한층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자 마크 앤드리슨은 딥시크의 등장을 두고 "미국의 AI 패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1957년 구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스푸트니크 모멘트’에 비유했다.

딥시크는 약 600만 달러(약 86억원)라는 비교적 적은 예산과 저사양 반도체만으로 미국의 최상위 생성형 AI 수준인 ‘딥시크 R1’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관련 주요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29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주가는 4% 넘게 하락했다. 27일 17% 폭락한 후 반등했던 흐름이 다시 꺾였다. 딥시크의 AI 모델이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 없이도 강력한 성능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향후 AI 반도체 시장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딥시크의 기술력에 대한 놀라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AI 업계에서는 오픈AI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오픈AI와 최대 투자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공식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MS는 딥시크의 모델 개발 과정에서 데이터 무단 수집이 이루어졌다면 법적 대응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 역시 AI 기술 유출과 관련된 우려를 반영해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칩 ‘H20’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에서는 딥시크의 등장으로 인해 미국 AI 업계의 ‘과잉 투자’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존 AI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개발한 모델과 유사한 성능을 딥시크가 훨씬 적은 비용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AI 시장에 거품이 끼어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티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딥시크의 성공은 미국의 AI 독점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사건"이라며 "가성비 AI 모델이 확산될 경우 엔비디아의 칩 판매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딥시크가 고사양 GPU 없이 개발됐다는 주장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으며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이 지속되는 한 미국 AI 강세가 쉽게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2025년 1월 28일 촬영된 딥시크 앱 화면 /로이터=연합뉴스

AI 업계의 충격과 맞물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동결 결정도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연준은 4.25~4.50%의 금리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신경전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다만 트럼프는 SNS를 통해 "연준이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재무부가 불필요한 규제 감축을 주도할 것"이라며 연준의 역할에 대한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내 증시는 설 연휴로 글로벌 시장의 충격을 비껴갔지만, 연휴 이후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AI 관련 종목들의 단기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AI 반도체 시장의 구조적 변화보다는 단기적인 조정 국면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하락장은 시장의 오해와 과장된 보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핵심 기업들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빅테크 실적 발표 시즌이 본격화됨에 따라 AI 및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는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지만, 테슬라는 부진한 성적을 보이며 주가가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