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유독 올해 명절 인사를 더 많이 보내려고 했던 이유

2025-01-28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본격적으로 새해가 시작됐다.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문자로라도 안부를 묻는 성의가 필요한 때다. /사진=unsplash의 Vonecia Carswell

2025년에 들어선지도 한 달여 됐지만 설을 앞둔 요 며칠 다시 새해 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요즘에 신년 덕담은 대부분 카톡이나 문자로 전한다. 부모님과 형제, 조카들이 함께하는 가족 모임 정도 되어야 직접 만나 명절 인사를 드리는 정도이고, 그 외에는 전화를 걸어 구두로 인사를 나누는 경우도 많지 않다.

올해 초에는 모처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들이 유머러스한 그림들로 표현된 이모티콘을 잔뜩 구매했다. 카톡으로라도 지인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지난 연말 연초 생각나는 몇 분에게는 ‘건강'과 ‘복’ 많은 한 해 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전했지만, 분주한 일상에 결국은 늘 하던 대로 단톡방을 오가며 한꺼번에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럼에도 받은 문자에 답하는 게 아니라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오랜만이었다. 

사실 올해 이런 마음을 먹은 이유가 있다. 게으른 나도 때가 되면 고등학교 친구부터 지금의 직장 동료까지 행복한 새해(혹은 즐거운 추석) 맞이하시라는 인사를 전하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근래 만난 적이 있거나 통화라도 해오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안부가 궁금하고 인사도 전하고 싶은 선후배와 친구도 있지만, 하는 일이 달라지고 사는 곳이 멀어진 채 몇 년간 연락도 못해 왔다면 결국 그 시절의 인연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이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지난 십여 년 연말이나 명절이 되면 잊지 않고 인사를 전하는 몇 명의 후배들이 있다. 한때 같은 팀에서 잡지를 만들던 에디터들인데 깍듯하게 안부를 묻고 다가오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라는 그들의 문자를 받을 때마다 늘 고마웠고, 왜 난 이렇게 먼저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지 반성했다. 

‘늘 똑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 지겨웠는데, 이젠 이런 일상들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느껴져요. 특히 편집장님께 받았던 사랑도 너무나도 감사하고요. 이젠 더 자주, 많이 표현하고 살아보려고 합니다.’, ‘새해 인사만 드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평소에 코스모폴리탄 생각 많이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제 근황은 다 비슷하고요. 막내가 내년이 입학이에요. 시간 빠르죠?’

올해도 근황과 안부를 전하는 이런 문자들을 받았다. 그 친구들에게 답장을 보내며 예전의 나는 어떤 선배였는지 한동안 생각해봤다. 이들과 함께 일했던 십여 년 전 말이다. 당시의 나는 해보고 싶은 게 많았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바로 움직였다. 목표가 명확했고, 그것을 위해 동료와 후배들을 독려했고, 어떤 식이라도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빈틈없이 몰두했다.

그렇다고 혼자만 달려간 건 아니었다. 함께하는 이들이 이 과정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설득하고 같이 뛰었다. ‘Go for It! (뜻을 세웠으니 일단 해 보자)!’가 신조였으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 좋은 결과를 얻었고, 참여한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아마도 당시 동료들과 후배들은 그런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조금이라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진= unsplash의 Hannah Busing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2012년 발간한 책 <피로사회>(민음사)를 통해 그 즈음의 시기를 ‘성과사회’라 정리했다. 각 시대마다 관통하는 패러다임이 있는데 당시는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다(Yes, You Can!)’는 긍정의 가치가 최고로 여겨지는 때였고, 이 사회의 뒷면에는 다른 사람의 억압이 아닌 스스로에 의해 피로해지고 좌절하고 우울해진다고 설명했다.

그 시기의 나도 그랬었는지 돌이켜본 계기는 후배들 덕에 떠올린 당시의 시간 때문이지만, 같은 작가가 작년 말에 지금을 정리하는 또 다른 책 <불안사회>(한병철 지음, 최지수 번역/다산초당)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앞만 보며 일을 해 왔던 당시와 달리 요즘은 한 순간 한 순간 되짚으며 그때와는 다른 바이브로 살아가고 있는데, 작가는 작금의 시대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다.

작가는 ‘성과’를 앞세운 ‘피로사회’에서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을 ‘불안’을 체제적으로 사용하는 ‘불안사회’라고 정의하며 이곳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생존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설명한다. 또 실패와 소외, 도태에 대한 불안으로 사람들 사이의 연대는 끊어지고 혐오는 만연해졌다고 덧붙인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보려는 희망’인데, 이는 현재에 안주하며 여기서 무언가 이룰 수 있으리라는 이전의 낙관주의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능동적 태도’를 의미한다고 전한다. 

‘피로’에서 ‘불안’으로, ‘긍정’에서 ‘희망’으로 바뀐 시간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시대가 달라져서인지 나이를 그 만큼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십여 년 전과 달리 곳곳에서 불안의 징후를 느끼는 건 사실이다.

연대와 공감을 위해 필요한 건 대화와 경청, 이해를 위한 노력이다. 그래서 더 안부를 묻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도 인사를 드린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지만, 올 한 해 건강하고 즐거운 일 가득하고 평안하시길 바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