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이 더봄] 나의 새해는 언제쯤 시작될까?

[최진이의 아취 단상(雅趣 斷想)] 1월의 사물, 솟대 솟대 세운 이들의 마음을 가늠해 보며 새해맞이 버퍼링

2025-02-01     최진이 레터프레스 작업자·프레스 모멘트 대표

새해가 밝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해를 맞아 시작했다는 느낌보다는 12월 31일에서 단지 하루가 더 지난 것뿐이라는 조금은 힘 빠지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1월 1일이 되어도 새해에 걸맞은 새로운 기운이 내 안에서부터 솟아나야 할 것만 같은데 생각만 그렇고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제야의 종소리는 언제 들었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새해가 되었다고 직접 빚은 만두를 넣은 떡만둣국을 끓여 먹은 것도 번거롭다는 핑계로 먹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2025년 새해는 시작되었지만, 나의 새해는 언제쯤 시작한 기분이 들려나?

2025년 프레스 모멘트 을사년 새해 카드 /프레스 모멘트

레터프레스(letterpress printing, 활판인쇄)를 시작한 2014년부터 언젠가는 한국 전통과 관련된 작업을 하겠다는 남모를 결심을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2025년 달력을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약속을 지킨 셈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 사물들을 생각나는 대로 써놓고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의 달에 어울리는 사물을 골라 적었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순서를 바꾸고 새로운 사물을 넣었다가 빼고를 반복하며 열두 개를 겨우 골랐다. 

순서를 얼추 정하고 나니 그즈음에 읽고 있던 책에서 발견한 한 단어가 열두 개의 사물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겠구나 싶어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바로 ‘아취(雅趣, 고아한 정취 또는 그런 취미)’라는 단어였다. ‘아취’라고 소리 내 단어를 말할 때의 느낌도 좋았지만 ‘고아하다(뜻이나 품격 따위가 높고 우아하다)’라는 단어의 의미 때문이었다.

바쁘게 변화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물건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단어 같았다. 만드는 데에도 분명 한참이 걸렸을 것이고, 사람들의 손을 거치고 거치며 사용되다가 어느 한 곳이 부서지거나 고장 나면 덧대고 고쳐져서 또 사용되었을, 옛사람들의 소중한 물건들. 그러고도 오랜 시간을 버텨 우리 곁에 남아서 그 쓰임, 의미, 형태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물건들을 ‘아취’라고 부르고 싶었다. 

2025년 프레스 모멘트 달력 '아취' 커버 /프레스 모멘트
2025년 프레스 모멘트 달력 '아취' 목차 /프레스 모멘트

열두 개의 사물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고 자기 달을 지킨 사물이 있었는데 바로 2025년의 첫 번째 달, 1월의 사물인 솟대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는 가끔 궁 옆에 기념품을 파는 오래된 가게 앞에 판매하는 것인지 장식용인지 알 수 없는 솟대를 제외하면 쉽게 볼 수 없는 사물이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여행길에 지방 어느 마을 초입에서 보았던, 그리고 그 이후로는 책이나 사진, 영상으로 접했던 사물이었다.

하늘 위로 오도카니 머리를 들고 서 있는 솟대 이미지들을 볼 때면 이런저런 질문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솟대 위에는 다른 동물이 아닌 왜 새가 있을까? 새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솟대를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에게 어떤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1월에 솟대를 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시작은 솟대로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팔뚝 굵기만 한 나뭇가지를 길게 잘라 나무 꼭대기에는 적게는 두 마리부터 많게는 열댓 마리의 새 나뭇조각을 얹어놓은, 질박한 형태의 솟대를 나는 왜 새로운 해의 제일 첫 번째 달에 두고 싶었을까?

2025년 프레스 모멘트 달력 중 1월 /프레스 모멘트

 

아마도 약 2주간의 시간 동안은 지난 한 해를 보낸 우리 모두 수고했으니 그 시간을 잘 정리해서 보내주고, 이제는 새해가 되었으니 적어도 서로를 못살게 굴거나 야박하게 굴지 말고 넉넉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는 일종의 새해맞이 버퍼링 기간이었던 것 같다.

 

음식도 푸짐하게 해 먹고 다양한 의례나 놀이를 했던 정월대보름이 설날보다 더 성대한 명절이었을 거라는 문구도 있었는데, 1월 1일 새해가 되어 몸을 풀다가 정월대보름이 되면 삐! 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진짜 달리기를 시작하는 느낌이었을까? 진짜 새해 같은 정월대보름에 다 같이 제사를 지내며 한 해 동안 잘 해보자고 영차영차 세운 솟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나 방향성을 눈에 보이는 사물로 대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마을 입구를 지나다니며 솟대를 볼 때마다 함께 (혹은 속으로 혼자) 다졌던 마음을 수시로 떠올렸을 것이다. 나의 얄팍한 상상력을 펼치다 보니 농경사회의 그들이나 현대사회의 나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시때때로 의지가 박약해지고 지구력이 떨어지는 인간이 가시적인 상징물에 의지하며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모습 말이다. 

한국의 솟대 /위키백과

새해 결심이나 이루고자 하는 바를 나름 나열하여 일기장에 써두고, 어떻게든 이루고 싶어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다가 정신없는 일상의 굴레에 파묻혀 내가 무언가를 써두었다는 것조차 잊을만할 때쯤 우연히 일기장 맨 앞장을 펼치고는 아차, 나에게 이런 원대한 계획이 있었지 싶어 그제야 마음을 다시 다잡고 결심을 써 내려갔을 때의 처음 그 기분을 떠올린다.

나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실천하려고 노력하다가, 또 잊고, 다시 발견하고, 또 실천하고 잊기를 반복하며 한 해를 보내기를 수없이 반복해 왔다. 그래서 좀 더 보이는 곳에 계획을 써두려고 하거나 일기장을 더 자주 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농경사회의 조상들이 어떤 마음으로 솟대를 세웠는지 이전에는 따로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세운다는 것이 나에게는 1월의 이미지로 다가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나만의 솟대를 세우기 전까지 나에게도 새해맞이 버퍼링 기간이 생긴 것 같다. 흩어져 있는 2024년의 일들을 잘 정리하고, 올해 하고 싶은 일들과 세부 실행 목표들을 정해 때때로 들춰봐야 하는 일기장보다는 수시로 볼 수밖에 없는 책상 앞이나 핸드폰 배경 화면에 써두어야겠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만두를 빚어 떡만둣국을 끓여 먹으며 우리 올해는 어떻게 지낼까, 이야기 나누며 ‘의식적’ 새해맞이를 해봐야겠다. 그래야 나의 새해가 진짜 시작한 기분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