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더봄] 건강하지만 맛있는 라면은 먹고 싶어

[권혁주의 Good Buy] 라면 순정남의 라면 랩소디 건강하고 맛있는 라면이 있을까? '건면'에 정착하다

2025-01-28     권혁주 쇼호스트
라면 /픽사베이

누가 필자에게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하면 “정말요? 네 좋아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비롯한 ‘라면먹고갈래요’라는 말이 호감 있는 이성 간에 여지를 남기는 관용적 표현이 되었지만, 필자는 순수한 의도로 이 말을 받아들이고 싶다. 왜냐하면, 필자는 라면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라면을 떠올리면 맛있지만 몸에는 좋지 않은 인스턴트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라면 애호가로서 슬프다. 맛있고 건강한 라면은 정녕 없는 걸까? 차마 라면을 끊을 수 없던 필자는 오랜 방황(?)을 마치고 마침내 ‘신라면 건면’으로 정착하기로 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한가? 열두 번째 Good Buy. 건강하지만 맛있는 라면을 찾아 떠났던 라면 랩소디를 풀어본다. 

편식을 모르는 라면 순정남

밥만큼 라면을 자주 먹는다. 진정성의 척도는 빈도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스스로를 라면 순정남이라 부르고 싶다. 하루 세 끼씩 계산해서 일주일에 스물한 번의 끼니가 있다면, 그중 대여섯 번은 라면을 먹는다. 날짜로 계산하면 대략 일주일에 4~5일은 라면을 먹는 셈이다.

봉지라면, 컵라면 모두 좋아한다. 어릴 적 채소 편식에는 우등생이었지만, 라면 편식에는 낙제생이었다. 특히나 군대 시절에 먹었던 기상천외한 라면들은 필자를 진정한 라면 애호가로 이끌었다. 봉지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컵라면처럼 익혀 먹는 ‘뽀글이‘부터 사천짜파게티 라면과 스파게티 라면을 섞어 만든 매운맛과 단맛과 짠맛의 조화 ’사천스파‘, 플라스틱 대용량 용기에 물과 라면과 각종 햄을 넣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먹는 라면까지. 라면학개론이 있다면 군대 시절의 라면은 나에게 심화학습이었다.

컵라면 왕뚜껑 /팔도 홈페이지

바쁜 일상 중에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종종 있다. 시간이 많지 않고 한 끼에 많은 돈을 쓰기가 아까울 때,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는다. 천원의 행복이다. 컵라면 중에서는 ‘팔도 왕뚜껑’을 가장 좋아한다. 용수철처럼 잘고 탱탱한 면발과 얼큰 짭짤한 국물. 무엇보다 라면 이미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노란색 양은 냄비에서 끓인 라면과 냄비뚜껑에 면을 받쳐 먹는 감성을 ’편의적‘으로 재현했다는 게 팔도 왕뚜껑의 백미다.

(냄비뚜껑처럼) 플라스틱 덮개를 그릇 삼아 면을 받쳐 먹는 그 순간은 행복이다. 여기에 곁들여 먹는 참치마요 삼각김밥 한 개는 컵라면 하나로는 살짝 부족한 포만감은 물론, 라면 국물에 마요네즈가 묻은 밥을 적셔 먹음으로써 고소 짭짤한 맛까지 즐길 수 있다.

건강한 라면, 정녕 없는 걸까

이렇게나 라면에 진심인 내게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직업 특성상) 미관상의 이유로 라면을 끊으라고 한다면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앉은 자리에서 라면 2봉지를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식성을 지닌 필자에게 꾸준한 체중 관리를 위해 라면을 조절하는 일은 매일의 숙제다. 체중감량의 주적인 라면. 한때 라면과 이별했던 시간을 당시 유행하던 이별 노래 가사로 위로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 맛있는 건 몸에 안 좋은 걸까.

건강적인 측면을 생각했을 때 라면을 기피하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칼로리, 또 하나는 염분. 맛만큼 비례하는 고열량과 고염분의 향연이 혀에는 이롭지만, 몸에는 해롭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요즘은 혈당 관리니 필수 영양소를 갖춘 완전식품이니 하는 세밀화된 건강 심리가 대중화된 만큼, 라면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음식 중에 하나다. 

그러던 차에 건면을 발견했다. 건강을 생각한 라면. 면을 기름에 튀기지 않아 열량을 낮췄다는, 신라면 건면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봉지라면의 평균 칼로리가 500~600kcal인데 신라면 건면은 350kcal 정도였다. 건강과 미용을 생각해 신라면 건면으로의 입맛 도전을 시작했다.

건강하지만 맛은 있고 싶어

신라면 건면의 첫인상은 100점 만점에 50점이었다. 뭐랄까. 면과 국물이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국물과 혼연일체가 되는 면발을 즐겼던 필자에게 국물과 잘 섞이지 않는 기분의 건면은 입맛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반 라면보다 가격도 1.5배 비쌌다. 한 번의 경험이라 생각하고 다시 원래 먹던 라면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건강(특히 붓기)을 생각하라는 아내의 강력한 권유가 따라왔다. 거역할 수 없는 마음을 시작으로 건면과 친분을 쌓는 날들을 시작했다.

신라면 건면 /농심 홈페이지

건면과 친해진 지 어언 3년이 된 듯싶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제는 건면에 입맛을 완전히 길들였다. (역시 남자는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하나보다) 이제는 원래 먹던 유탕면을 먹게 되면 오히려 면이 기름진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심심했던 건면의 미감이 이제는 담백함이라는 매력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먹어도 크게 부담이 없다. 라면이 원래 먹기 전에 가장 그립고, 먹었을 때 행복하고, 먹고 나면 (더부룩한 죄책감에) 후회하는 일의 반복이었는데 건면으로 바꾸고 나서 식후 느낌이 좋아졌다. 더부룩한 느낌이 거의 없어졌으니 말이다.

아주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건강한 식습관을 매번 지키기는 어렵다. 같은 음식이라도 건강한 쪽으로 길들이는 게 현실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맛과 취향을 포기할 수 없을 때 스스로를 관성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다짐'이 필요하다. 라면 애호가인 필자에게는 신라면 건면이 다짐의 결과였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맛을 포기하지 않고도, 건강에 신경을 써볼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