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설날] ① "고향이 없는데 어떻게 가요"···귀성길 풍경 바꾼 고령화

지방 소멸, 20년간 설날 풍경 바꾸다 빈집 늘고 귀성객 줄어드는 고향 현실 전통 지키기 정책과 공동체 복원 필요

2025-01-28     김현우 기자
인구 감소 문제는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10월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 89곳 중 수도권인 인천 강화군과 옹진군, 경기 가평군과 연천군 등 4곳이 포함됐다. 사진은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도로변에서 허물어져 가는 빈집의 모습 /연합뉴스

"20년 전 설날, 고향 마을엔 생기가 넘쳤죠. 멀리 사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음꽃을 피웠어요. 지금은 달라요. 아들딸의 차 대신 농기계가 마당을 차지하고 있어요." 박씨 할머니(78)는 순창의 텅 빈 집에서 올해도 설날을 홀로 맞이할 준비를 한다.

"설날에 갈 곳이 없다." 42세 박정숙 씨는 10여 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경기도로 전입했다. 귀성길은 옛말이 되었다며 고향인 순창에는 가족이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설날 풍경은 크게 변했다.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고향을 비웠다. 명절은 고향집의 웃음 대신 적막을 더해가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귀성길은 고통스러울 만큼 붐볐다." 당시 국토교통부 등 정부 자료에 따르면 설 연휴 이동 인원은 매년 약 3500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2023년 그 숫자는 약 2852만명으로 줄었다.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 끊기면서 농촌 마을 곳곳엔 텅 빈 집과 한산한 거리가 남았다.

1992년 9월 9일 추석을 이틀 앞두고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구간 하행선이 귀성차량들로 정체되어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 있다. /연합뉴스

지방 소멸은 현실로 다가왔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가 발표한 소멸위험지역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소멸위험지역은 0곳이었지만, 2022년에는 6월 기준 115곳으로 늘었다. 25년 뒤면 전국 228개 시·군·구 전체가 소멸위험지역에 진입할 것이란 섬뜩한 경고도 나왔다. 전남 해남에서 홀로 지내는 박모 씨는 "이웃마저 모두 도시로 떠났다. 설날이 와도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방 소멸의 첫 번째 신호는 빈집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농촌 빈집 실태와 정책과제'를 보면 전국 빈집의 39.9%는 농촌에 있다. 빈집 비율이 도시보다 약 1.9배 높다. 특히 면 지역은 읍 지역보다 빈집 비율이 높다. 면 지역의 빈집 비율은 6.48%로 읍 지역의 3.36%보다 약 2배 높다. 일부 지역에서는 빈집 비율이 30%를 넘어섰다. 단순히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의 증가가 아니라, 고향이라는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설날의 전통 풍경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정미숙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빈집의 증가는 단순히 농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공동체의 해체가 명절의 의미를 잃게 하고 노인들의 고립을 심화시킨다”고 했다.

수도권 경기도의 빈집 /연합뉴스

젊은 세대의 설날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20대와 30대의 약 70%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설날에도 귀성을 포기한다. 이동 비용과 시간 문제도 크지만, 도시에서의 삶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명절은 이제 가족 재회가 아닌 휴식과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날로 바뀌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를 보면 설 연휴 기간 이동에 사용하는 예상 교통비용은 약 24만 8000원으로, 작년 설 연휴 기간(22만원 8000원)보다 약 2만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대학생활 플랫폼 '에브리타임' 운영사 비누랩스가 지난 2022년 2월 17일부터 22일까지 20대 대학생 남녀 각각 500명씩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0대 Z세대의 월평균 소비액은 52만원이다.   

데이터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는 전국 만 20~69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두고 설 연휴에 대한 여론 조사를 진행했다. 피앰아이에 따르면 설 연휴 동안 ‘집에서 쉴 예정’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1.6%였다. 그 뒤를 이어 ‘고향(본가)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응답이 35.3%, ‘미정’이라는 응답은 17.0%로 나타났다. 연휴 기간에도 출근하거나 업무를 할 예정이라는 응답은 7.0%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고독사 중 자살 사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13.9%인데 반해 같은 해 20대 고독사 중 자살 비중은 71.7%, 30대도 51.0%나 된다. /연합뉴스

김지훈 국토발전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에 "지방 소멸의 가장 큰 요인은 젊은 층의 수도권 집중이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계속되면서 지방의 활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방 소멸 문제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지방 소멸 위기를 겪어왔다. 도야마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귀성 비용의 50%를 지원하고 지역 내 공공 서비스를 확충했다. 이 결과 도야마현의 인구 감소율은 다른 지역보다 눈에 띄게 낮아졌다. 김지훈 연구위원은 "한국도 일본처럼 적극적인 재정 지원과 지역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을 살리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정미숙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설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고향을 지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설날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다. 우리 공동체의 뿌리를 확인하는 날이다. 고향이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의 뿌리도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