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도 우려하는 韓 상법 개정···밸류업커녕 주주보호 효과 無

대주주의 이익이 소수주주 이익 침해? 응답자 52%가 "예측 불가 부작용 크다"

2025-01-20     이상헌 기자

"한국 기업들은 유럽과 미국의 행동주의 투자자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일본, 나고야 가쿠인대 로스쿨 교수

"경영판단의 법칙 없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이사들의 주도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할 것으로 판단된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지난 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 관련 공청회에서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법 제382조의3가 규정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가 아닌 '회사'에 한정되는 것으로 학계 논의는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이에 주주 보호 의무 조항이라도 상법 개정안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해외 기업법학자 절반이 소수주주 보호 효과에 부정적일 것이란 답변을 내놨다.

해외 주요 로스쿨 상법 전공 교수 10명 중 7명(68%)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라는 일반 원칙에 이론이 없었다. 아울러 상법 개정을 통한 밸류업 정책이 목표 달성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응답이 36%, 이사의 주도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할 것이란 학자도 28%로 나타났다.

20일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인학회(회장 이웅희)에 의뢰해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국 코넬대, 일본 히토쓰바시대 등 해외 주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과반 이상이(52%) '예측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라는 답변이 68%로 가장 많았으며 '회사와 주주'(32%), '주주'(8%), '회사·주주·이해관계자'(4%) 순으로 의견이 이어졌다. 한경협 관계자는 "해외 상법 전문가들도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며"이는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외 주주와 이해관계자라고 본 응답자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일치하므로 회사와 주주의 구분은 형식적'이라는 답변(28%)이 돌아왔다. '회사와 주주 이익은 자주 불일치하기 때문에'(16%), '소수주주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16%)이란 의견도 있었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소수 주주 보호에 효과적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8%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소수 주주 보호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국회에서 추진되는 법령 개정에 대해선 부정 의견이 긍정보다 1.7배 많은 셈이었다. 특히 '이사가 소수주주의 이익을 공정하게 고려하게 될 것'(28%), '한국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8%)이라는 긍정적 답변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기업의 근본적 목적이 주주 부의 극대화다. 이는 주주가 기업 실패의 위험을 부담하는 대가로 받는 정당한 권리다. 다만 주주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고정 청구권을 충족시키고 남은 잔여이익에 대한 청구권을 가진다.  문제는 여기서 '어떤 주주'의 부를 극대화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주주의 이익 추구가 소수주주의 이익과 충돌한다면서 주주 보호 의무 조항 삽입을 요구하지만 단기적인 시세차익만을 추구하는 소수주주를 기업의 성패에 큰 책임을 지는 창업주와 대주주를 동일선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지적이 따른다.

캐나다 뉴브런즈윅대 한 교수는 "소수주주가 기회주의적 소송(파업소송)을 하거나 타 주주들은 배제된 채 오직 일부 소수주주만 보상을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히토츠바시대 한 교수는 "대주주, 소수주주를 불문하고 주주가 자기 이익을 위해 이사의 경영 판단을 수시로 강제할 수 있다면, 회사의 장기적인 사업 지속에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이사의 재량권은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다수의 해외 주요 로스쿨 교수들도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만 한정하고 있으며, 이사 충실의무 확대가 소수주주 보호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사 충실의무 확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배치되고, 소송 증가, 투자 위축 등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입법 논의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