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 더봄]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마음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
[김승중의 슬기로운 인간관계] 이름을 불러주면 대화에 집중하고 호감 느끼게 해 존재와 정체성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신호로 작용 인간관계 깊게 만드는 가장 간단하고 강력한 방법
당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그래서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이다. 내가 없다면 나에게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할 것도 없다. 소유한 재산 목록을 가장 가치 있는 순서로 작성할 때, 목록의 처음과 마지막 어디에도 ‘나’를 적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이는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나를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게 대우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 여부를 늘 섬세하게 알아차린다. 감정이 센서가 되어 그것을 알려준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작으나 힘이 센 단서는 이름이다. 데일 카네기는 ‘이름은 그 사람에게 가장 달콤하고 중요한 소리’라고 말하며, 이름이 단순한 호칭을 넘어 한 사람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은 ‘누군가 내 이름을 올바르게 부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나를 부를 자격이 있으며 나의 사랑과 봉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했다. 에머슨의 말은 이름을 정확히 부르고 기억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존중의 표현임을 잘 보여준다.
사회적이고 관계적 존재인 사람에게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과 중요성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될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이름이 뇌에 미치는 영향
놀랍게도, 우리 뇌는 자기 이름에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자기 이름을 들으면 뇌의 전측 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과 내측 전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 같은 영역이 활성화된다. 전측 대상피질(ACC)은 감정 조절, 갈등 해결, 주의 집중과 관련이 있다. 즉,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주의를 끌고,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상대가 대화에 집중하고 호감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대화 중에 동료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들이 대화에 더 집중하고, 감정적으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내측 전전두엽(mPFC)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고와 공감, 사회적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즉,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며, 상대방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상대의 자아존중감(self-esteem)을 높이고 더 깊은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혼잡한 군중 속에서도 우리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즉시 반응한다. 자기 이름을 듣게 될 때, 뇌의 상행 망상 활성화 시스템(Reticular Activating System, RAS)이 작동하여 우리의 주의를 즉각적으로 집중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RAS는 뇌의 뇌간(중뇌, 연수, 교뇌에 위치)에서 시작되어 대뇌 피질과 연결되고, 주로 각성, 주의, 동기부여, 의식과 같은 중요한 기능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또한, 자기 이름은 P3 뇌파(특정 주의와 기억을 반영하는 전기적 활동)의 강력한 증가를 유발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우리의 뇌가 이름을 특별히 중요하게 처리한다는 신호다. 이름을 들으면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되며, 이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경험을 제공한다.
이름이 긍정적인 자기개념에 미치는 영향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름은 우리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자기확인이론(Self-Verification Theory)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정체성을 타인으로부터 확인받으려는 경향을 설명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자아상과 일치하는 정보를 타인에게서 듣거나 경험할 때 심리적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한다. 이러한 인정은 개인의 자기개념(Self-Concept)을 강화한다. 자기개념은 한 개인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 가치관, 그리고 정체성의 총체를 의미한다.
사회적 정체성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개인은 자신을 특정 집단에 속한 구성원으로 여길 때 소속감을 느낀다. 이 이론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정체성이 개인의 자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팀 리더가 팀원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면, 팀원들은 자신이 팀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의 소속감을 높이고, 조직 내 협력과 생산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처럼, 이름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개인의 자기개념과 사회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름을 기억하고 사용하는 요령
이름을 소중히 여기고 부르는 것은 인간관계를 깊게 만드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의 하나다. 다음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시작은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러한 가치의 실천으로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겠다는 결심을 하는 일이다. ‘나는 이름을 못 외운다’는 핑계를 떨쳐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결심하면 그에 반응한다. 그러므로 이름을 외우겠다고 결심하고 집중하면 즉시 이름 기억력이 증진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서 인사를 하며 명함을 교환했다면, "김영희 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와 같이 즉시 만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하면 좋다. 그리고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이름을 사용하면 이름을 기억하기도 쉽고,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전달할 수 있다.
"이름이 멋지네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해도 좋다. 이름에 관한 대화는 대화를 깊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이름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헤어질 때도 그냥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고만 하지 말고 이름을 확인하고 기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밝은 목소리로 이름을 사용해서 인사하는 것도 좋다.
이름과 함께 상대방의 특징을 스마트폰의 메모 기능 앱을 활용해서 적어 두는 습관도 좋다. 만난 사람의 이름과 함께 인상 깊었던 대화나 특징을 간단히 적어두면 다음에 다시 만날 때 자연스럽게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이름을 자주 불러주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평소에는 ‘안녕하세요’라고만 인사를 했다면, 이제는 반갑게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다. 전화 통화를 할 때, 이메일을 보낼 때, 카톡으로 대화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든 대화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적어도 대화 전체에서 두세 번은 이름을 사용하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상징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는 강력한 도구다.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 건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게 아니다. 그건 상대의 존재에 다가가고, 그 의미를 깨닫는 ‘이르는’ 과정이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들은 단순한 ‘아무개’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꽃’이 된다.
이름은 우리가 서로에게 이르는 통로이다. 상대방을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행동이 세상 속에서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간다.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것은 개인의 마음을 여는 열쇠와 같다. 상대방이 소중하다면 그것의 구체적 실천으로 이름을 기억하기로 결심하자.
오늘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환한 미소를 건네며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