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서로 지식 나누는 어른들을 위한 학교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나의 지식 나누고 당신의 지식 배우는 어른들을 위한 학교 경로당, 이렇게 바꾸자

2025-01-23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

당신의 재능과 세상의 요구가 맞물리는 곳에 당신의 천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미국 퇴직자협회 한 사람이 변호사협회를 찾아가 물었다. "시간당 30달러를 지급할 테니, 퇴직 노인들에게 법률 상담을 해줄 수 있습니까?" 변호사들은 그렇게 저렴한 돈으로는 상담에 응할 수 없다며 "노"라고 거절했다.

며칠 후 그는 변호사협회를 다시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도움이 필요한 퇴직 노인들에게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들은 적극적으로 "예스'를 외쳤다.​ 어떻게 무료가 30달러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전자의 요구는 변호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하지만 같은 행위를 자원봉사라는 틀에 넣어 제시하자 모두가 기쁘게 수락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3억원이 소요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연구소에 의하면 아이를 낳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르는 데 약 3억원의 경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일견 그렇게 돈이 많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학비 외에 식비, 병원비, 옷값, 교통비, 용돈 등 각종 잡비를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 후 직장을 퇴직할 때까지 들어간 경비도 적지 않다. 결국 은퇴할 때의 성인이 되면 수많은 비용과 노력이 그에게 투자된 셈이다. 대신 그에게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인적자산이 있다. 이런 자산이 은퇴와 동시에 그냥 사장된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손해다.

은퇴한 사람은 이렇게 삶을 살며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를 그가 죽기 전에 주위에 나누어주고 싶다. 우리 인류가 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이전 사람에게 받은 것에 자신의 지혜를 더해 뒤에 올 사람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영국 U3A 홈페이지

이 나이쯤 되면 가장은 직장에서 퇴직하고 주부는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재교육을 통해 다시 한번 비상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피터 라슬렛은 이 시기를 인생 3기 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성인들이 모여 서로 지식을 나누는 커뮤니티를 세웠다. 이른바 U3A(University of the 3rd Age)의 시작이다. 영국에는 이런 학교가 1000여 개가 넘는다.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2013년 분당에 아름다운인생학교를, 2020년 위례신도시에 위례인생학교를 개교했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은퇴한 사람이 모여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커뮤니티다. 

이곳에는 수강료나 강사료가 없다. 그저 무료로 자신의 지식을 나누어줄 뿐이다. 다만 학교 운영을 위해 소정의 회비는 받는다. 그동안 교회, 지자체 등 여러 곳에서 견학을 왔고 지금도 곳곳에서 유사한 커뮤니티를 추진 중이다.

인생학교 심리학반 수업 /백만기

문제는 학습할 공간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공간이 없는 건 아니다. 전국 곳곳에 6만여 개의 경로당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이 요즘 공동화되고 있다. 경로당을 이용하던 노인은 돌아가시고 새로운 노인은 그곳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 경로당에 아무 프로그램이 없다. 고작 화투나 장기를 둘 뿐이다. 더구나 일부 경로당은 기득권을 가진 노인들이 자기 편이 아니면 배척한다든가, 공금을 중간에서 가로채기도 한다. 어르신 모두를 위한 공간이 이렇게 얼룩지며 신노년 세대가 등을 돌리면서 머지않아 경로당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쪽은 공간이 남아도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공간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로당의 1%만이라도 인생학교로 전환할 수 있으면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문화를 보급할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경로당을 개방하여 새로운 노인 세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했으면 한다. 현재의 공간만 잘 운영하더라도 별도의 예산 없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바람직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