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끓는 지구, LA산불의 경제학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LA 산불, 2900만 평 태우고 200조 손실 2022년에만 산불로 1295조원 사라졌다 자연재해로 GDP 4% 감소···안보 위협 ↑

2025-01-20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미국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에서 카지노로 유명한 네바다의 관광도시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보면 데스밸리 사막을 지나게 된다. 고도가 해수면보다 낮다고 하는 데스밸리는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경관을 제공하지만 한겨울에도 평균온도가 20°C가 넘을 정도로 무덥다. 

데스밸리는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경관을 제공하지만 한겨울에도 평균온도가 20°C가 넘을 정도로 무덥다. /연합뉴스

한여름에 데스밸리를 여행하면 40°C가 넘는 더위가 숨을 막히게 한다. 더운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하지만 데스밸리의 바람이 큰 재앙을 일으키는 것은 겨울이다. 늦가을이면 사막 한가운데에서 강력한 고기압이 형성된다. 강한 바람이 기압이 낮은 서해안 바닷가 쪽으로 분다. 

강풍이 지나는 곳에 샌타 애너(Santa Ana) 협곡이 있어 악마의 바람 샌타 애너라 불린다. 뜨겁고 건조한 바람의 풍속이 시속 100km에 이르기도 한다. 올해에는 특히 심했다. 풍속이 자동차의 과속에 해당하는 시속 110km를 넘어서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산불이라도 붙으면 걷잡을 수없이 번질 수 있었다.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산불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봤지만 올해 남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지역 산불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LA 부근의 부촌인 팰리세이즈에서만 2900만 평(약 9586만7768㎡)의 면적이 불에 탔다. 산불로 인해 2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1만 채 이상의 건물이 소실됐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로 기록된 이번 LA 산불의 경제적 피해는 2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회사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화재보험료로 지급해야 할 금액이 거의 30조원에 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산불로 인한 위험이 점점 커지자 이 지역 보험회사들은 아예 주택 화재보험을 취급하지 않을 태세다.

온화한 기후에 바다와 산과 사막이 모두 가까이 있어 천혜의 거주지로 인기를 끌었던 이 지역의 주민들은 끔찍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화재를 피해 대피했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앙상하게 타고 난 폐허의 흔적뿐이다. 사람들이 걷던 거리와 식당과 학교 모든 것이 없어졌다. 이들이 겪을 정신적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LA 맨더빌캐니언 지역에 화염이 번지고 있다. /AP=연합뉴스

피해를 본 주민들이 살 집을 구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LA 지역의 아파트 월세도 치솟고 있다. 무엇보다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할 일터가 없어졌다. 대략 2만 개 안팎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산불의 피해는 경제성장률을 0.2%나 끌어내릴 정도다. 

미국에서 산불은 LA 지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여러 지역에 걸쳐 해마다 엄청난 피해를 일으킨다. 주택, 건물과 같은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고 농업, 관광, 소매 등 지역 경제도 직격탄을 맞는다. 주민의 건강상 문제로 인한 비용도 발생하고 화재 진압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실제 피해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미국 의회의 경제 자문 기구인 합동경제위원회(Joint Economic Committee)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산불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피해가 적게는 571조원에서 많게는 1295조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는 최대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의 2~4%에 해당하는 액수다. 

피해의 범위도 광범하다. 화재로 인한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최대 489조원에 달한다. 거기에 더해 유독성 연기로 인한 피해 규모도 최대 293조원으로 추계되고 소득 감소분이 최대 214조원이라 한다. 화재가 초래한 수질 악화 비용도 최대 21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밖에 보험금 지급, 목재 손실, 전력 손실 등으로 인한 피해액도 각각 최대 14조원이 넘는다.

이처럼 천조국이라 하는 미국의 전체 국방비에 맞먹는 피해가 산불로 인해 발생하고 있지만 근본적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야외에서 점화를 금지하는 등 규제적 대응이 있지만 자연 발화하는 산불을 막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매년 천문학적 예산을 편성해야 하지만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실정이다.

실제 대형 산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캘리포니아주는 경제 규모로 세계 5위 안에 드는 가장 부유한 주다. 그러니 남에게 손 벌리지 말고 산불을 자체 해결하라는 주장도 강하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지지세가 막강한 진보세력의 근거지라 곧 집권할 도널드 트럼프가 무척 싫어하는 주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캘리포니아가 쓸데없이 규제를 남발해 큰 호수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물을 낭비하고 있다며, 산불 책임은 무능한 개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가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흥미롭게도 2006년 뉴섬 주지사가 이혼한 킴벌리 길포일(Kimberly Guilfoyle)은 트럼프의 큰아들인 도널드 주니어의 약혼녀이기도 했다.

불길이 휩쓸고 간 LA주 알타데나의 주택가. 화마에 새시만 남은 차량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길포일은 뉴섬 지사와 이혼한 뒤 폭스 뉴스 진행자로 나서면서 트럼프의 선거 운동을 적극 돕기도 했다. 트럼프는 그를 그리스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했다. 물론 능력보다는 측근 위주로 사람을 고르는 트럼프 특유의 정실인사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캘리포니아 산불의 근원적 이유 가운데 하나인 지구 온난화 대응에 대하여 트럼프는 매우 부정적이다. 그는 기후 변화 주장이 과학이 아니라 거짓 선동이라며 파리 기후 협정의 탈퇴를 강행하기도 했다. 권좌에 다시 오르는 트럼프가 이 모양이니 그간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정책을 지지했던 금융권과 경제계도 슬그머니 물러서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자연재해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2070년경에는 지구 인구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자연재해를 국가 안보상 위기로 보고 경각심 있는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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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