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환승 밀어주기' 실현되나···보험사 실적 상승 가능성도
5세대, 비급여 자부담률 95%에 보장도 축소 자발적 이탈 적을 경우 약관·법 개정 가능성 IFRS17 도입 후 '실적 과장됐다' 경고했지만 신계약 다수 맺으면 CSM에 또 영향 가능성
지속적인 실손보험 적자 발생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계약을 해지한 후 보장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은 5세대 실손보험으로 갈아타도록 유도하는 약관 변경이나 법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혜택이 많은 상품에서 적은 상품으로 이탈을 유도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 이후 정리되지 못한 보험사 실적 산출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9일 서울 중구에서 '비급여 관리 개선 및 실손보험 개혁 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실손보험 개혁 방안으로 5세대 상품을 신설해 보장 한도 제한이 없고 자기 부담률이 낮은 초기 실손보험(1·2세대) 가입자의 계약을 재매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관이 미진하게 진행될 경우 약관 변경까지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손보험은 가입 시기에 따라 가입 가능한 상품이 달라져 왔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상품은 4세대 실손보험으로 2021년 출범했다. 1세대 상품은 2009년 9월까지, 2세대는 1세대 판매가 중단된 이후부터 2017년 3월까지 판매된 상품을 말한다.
2·3·4세대 실손 상품은 금융당국의 본격적인 규제가 시작된 이후부터 판매돼 모든 보험사 상품의 보장 범위가 비슷하지만 1세대 상품은 가입자별로 보장 범위와 보험료가 상이하다.
1·2세대 실손보험 상품은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적용받을 수 없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특약 보장 범위가 3·4세대 상품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넓다. 비급여 진료비에서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닌 부분 즉 '자기부담금'의 경우 1세대는 0%, 2세대는 10~20%로 책정돼 있다. 이는 3·4세대(30%) 상품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4세대 상품은 비급여 일부 항목에 대한 보장 횟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이에 1·2세대 손해율이 치솟자 업계는 백내장 수술 보장 기준에 관해 법정에서 다투기도 했다. 지난 2022년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에 입원 치료가 필요 없다고 판단, 보험사가 통원 치료비만 보장하면 된다고 명시했다. 이에 다음 해에는 백내장 수술 건수가 90% 줄어들고 1·2세대 상품의 손해율은 상대적으로 안정됐다.
그럼에도 1·2세대 실손 가입자가 앞으로도 청구 횟수와 액수에 관계없이 지급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부와 의개특위는 해당 상품 가입자 수를 줄이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5세대 실손보험 상품은 '관리급여' 항목을 신설하고 과잉 우려가 큰 도수치료, 무릎 주사 등을 이에 편입할 예정이다. 관리급여 항목에는 자기 부담률을 90~95%까지 적용하기로 했으며 치료비는 정부가 설정한다.
의료개혁특위 관계자는 "최후의 수단으로 법 개정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고 반드시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했지만 보험 소비자들은 보장 범위가 좁은 상품으로 옮겨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 역시 여성경제신문에 "정부가 '그렇게(이탈 유인 또는 법 개정) 해라'라고 정해버리면 반발이 굉장히 클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계약 재매입이 속행된다고 하더라도 '보험사만 좋은 일'이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5세대 상품은 2023년 도입된 보험 회계제도 'IFRS17 ' 하 보험사 실적 산출 주요 요소인 CSM(보험 계약마진)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CSM은 보험사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계약에서 미래에 얻을 수 있는 미실현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다. 신계약 판매 증가는 CSM을 확대하고 이는 곧 보험 이익 규모를 늘리는 구조다. 전용범 한국계리사협회 회장은 본지에 "재매입 대상 상품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5세대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초기에는 CSM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금융당국은 CSM 탓에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의 실적이 과장됐다고 보고 이에 대한 감독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보험사가 자의적으로 인식한 미래 수익이 지나치게 높았으며 이를 통해 높게 계산된 CSM이 실적을 올렸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에 관해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본지에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보험사는 보험사대로 혼란스러운 것은 맞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