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더봄] 악당을 처단한 정치인, 알고 보니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강신영 시니어입장가] (30) 주먹의 시대에서 법의 시대로 전환되는 그 과정에서 오해로 탄생한 영웅 이야기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는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진실에 눈을 감아주기도 한다는 신사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팩트만을 추구하는 기자 정신에는 위배되지만, 세상은 예외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부영화의 거장 존 포드 감독 작품으로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리 마빈, 베라 마일스 등이 출연했다.
랜스(제임스 스튜어트 분)는 친구였던 톰(존 웨인 분)의 장례식을 위해 텍사스의 작은 마을인 신본으로 향하고, 가는 도중 회상에 잠긴다.
랜스의 기억은 수십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갓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은 랜스가 무법자가 활개 치던 서부로 가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전을 들고 서부로 향하던 랜스는 악당 리버티 밸런스(리 마빈)의 습격을 받아 돈도 다 빼앗기고 의식을 잃는다. 하지만 톰(존 웨인)의 도움으로 신본으로 옮겨져 곧 의식을 회복하고, 숙박비 대신 일하게 된 식당 주방에서 할리라는 연인을 만난다.
그러나 신본은 리버티 밸런스(리 마빈 분)라는 극악무도한 불한당 때문에 온 동네가 공포 그 자체였다. 신본에 도착한 랜스는 법으로 리버티를 응징하려고 하지만 무법자에게 법이 통할 리 만무하다. 리버티 밸런스는 앞치마를 두른 랜스를 보고 비웃는다.
몸이 회복되자 랜스는 야학을 열어 마을 사람들을 교육하며 할리에게도 글을 읽고 쓰게 만든다. 마침 정치적으로 마을이 연방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법률사무소를 열어 리버티 밸런스가 법에 따른 처벌을 받게 노력한다.
톰은 랜스의 그런 행동을 보며 리버티를 이길 수 있는 건 총뿐이라고 비웃는다. 피바디라는 이름의 언론인도 <신본 스타> 신문사를 통해 마을을 문명화시키고 근대적 이념을 전파하려고 노력하지만, 문맹이 심각한 마을 사람들로 인해 좌절한다. 랜스도 또한 법이 지배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버티 밸런스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힘이 세고 총을 더 잘 쏘는 톰이다. 신본에서 리버티를 대적할 유일한 사람인 톰은 리버티에게 맞설 방법은 오직 '총'뿐이라고 말한다. 랜스와 톰은 표면적으로 '법'과 '총'이라는 견해 차이를 보이는데 그 내면에는 할리(베라 마일스 분)라는 여인을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는 사이 리버티의 만행은 갈수록 심해지고 최후의 시간이 다가온다.
이후 마을 최고의 악당이자 무법자 리버티 밸런스 일당이 자신들을 비난하는 기사를 쓴 피바디를 린치해 중상을 입히는 사건을 일으키고 신본을 쑥대밭으로 만들자, 이때까지 그의 가혹함과 폭력에 치를 떨던 랜스가 끝끝내 법으로 그를 심판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꺾고 결투를 요구한다. 할리는 랜스가 도망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랜스는 사격 연습을 두어 번 해보기는 했다. 그러나 범생이 샌님이다.
결투에서 빠르고 정확한 사격으로 악명을 떨치던 리버티 밸런스다. 첫 총알은 일부러 랜스 옆의 물통을 쏴서 물을 뒤집어쓰게 하고, 다음 총알은 총을 든 오른팔에 맞힌다. 마지막으로 미간에 쏘겠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그 순간 리버티 밸런스가 쓰러진다. 예상과 달리 결투에서 랜스가 살아남고 밸런스가 죽고 만 것이다. 랜스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라 불리며 지역에서 인기가 높아진다.
이윽고 서부에도 정부의 공권력이 미쳐 연방 상원의원 선거가 시작되고 랜스는 출마를 고민하지만, 대농장주 위주의 반대파가 밸런스 사살을 트집 잡는다. 랜스도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어기고 사람을 죽인 손으로 누굴 도울 수 있겠냐며 주 대표 출마를 포기하려 한다.
그때 톰이 나타나 랜스에게 그날 리버티 밸런스를 죽인 사람은 자신이라고 밝힌다. 리버티 밸런스가 랜스를 쏘기 직전 건물 그늘에서 라이플로 그를 저격한 것이다. 톰은 랜스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이에 용기를 얻은 랜스는 문을 열어 선거사무소 대강당으로 들어가지만 톰은 랜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다음 뒤를 돌아 회의장 건물 밖으로 나선다.
톰은 자신이 리버티 밸런스를 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당신은 생각이 많고 말도 많은 겁쟁이라며 랜스를 놀리지만, 톰은 랜스가 유세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시대, 즉 폭력에 의지하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가고 법이 지배하는 시대가 왔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할리가 랜스를 더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를 랜스에게 양보하고 자포자기하여 술에 취해 할리와 결혼해서 같이 살기 위해 지은 자신의 집을 불태우며 이후 술에 의지하며 삶을 살게 된다.
랜스는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 하에 주 대표에 당선되고, 워싱턴으로 진출하여 주지사, 상원의원 등을 역임, 승승장구하며 성공한다. 랜스는 회고를 마쳤으나, 뜻밖에도 기자들은 이 사실을 기사화하지 않기로 한다. 톰은 이미 죽었고 존경받는 랜스를 악인 리버티 밸런스와 결투를 벌여 이긴 전설적 인물로 남겨 두기로 한 것이다.
이 부분이 감동적이고 한편으로는 충격적이었다. 특종기사에 욕심을 내는 것이 기자들이다. 팩트가 아니라도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리고 흠집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기 마련인데 이런 아름다운 합의와 실행은 모든 사람을 흐뭇하게 만든다.
랜스는 톰의 흑인 일꾼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돈을 쥐여준다. 랜스 부부는 기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거론 중인 큰 법률안인 수도 관련 법률만 통과시킨 뒤, 신본으로 낙향해 법률사무소를 차리자고 얘기를 나누며 기차가 떠나는 걸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난다. 할리도 고향에서 말년을 보내게 되어 좋다며 반색한다. 오래전 영화지만, 명화의 반열에 올라 있고 교훈도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