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백일장] 곱게 물들어가는 노치원의 가을

제3회 해미백일장 해미 희망상 박철종 님 수상작

2025-01-09     최영은 기자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어르신들과 2025년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고 싶다. /박철종

안동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부모님 건강 악화로 직장도 다 그만두고 수원 본가로 올라와서 부모님을 모신 지 1년, 한 달 차이로 두 분 다 소천하시고 말았다. 생계를 위해 고민 끝에 요양보호사 일을 하게 되었다. 내 나이 61세 남자로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도 센터장님이나 동료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서 열심히 배워가며 보람을 찾는 중이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센터는 40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계신다. 대부분 과거에 수술이나 입원 병력을 가지고 계시고, 경증의 알츠하이머와 치매 증상이 있으신 어르신들과 거동하시는데 워커 이용이나 선생님들과 동행하셔야 하는 어르신들이다.

담청색 빛 하늘이 고운 가을날 아침 노치원 등원 차량이 도착한다. 단감 향기 묻어나는 햇살 아래 드르륵 문이 열리면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아이들처럼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일제히 문을 향한다.

박철종 요양 보호사와 한 어르신의 모습 /박철종

“안녕하세요.” 상냥한 목소리로 어르신들과 눈 맞춤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시는 어르신, 활짝 웃어주시는 어르신, 손에 사탕을 쥐여 주시는 어르신, 어느새 아침은 기다림이 되었고 그리움의 시간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센터 내 지정된 자리에 앉으시면 따뜻한 물 한 잔 가져다드리고 다시 한번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부모님 살아생전에도 겪어보지 못한 묘한 기분 좋은 설렘이다.

일과는 등원하시면 대소변 위생 보살핌이 필요하신 분들은 바로 화장실로 모신다. 다른 분들은 각자 자리에 앉으시면 외투를 받아 옷장에 정리해 드린다. 따뜻한 보리차 한 잔 드리고 식전에 약 드셔야 하는 분들은 약을 드린다. 혈압과 체온 측정을 하며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에 출석을 부를 때면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듯이 건강하신 모습으로 대답을 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해드리고 뇌 건강과 치매 예방 체조를 한다.

처음에 입사해서는 어르신들이 치매 증상이 있다고 믿기가 어려웠다. 여러 날 지내면서 말벗을 하다 보니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계속 반복되는 말씀을 하시고 가져오시지도 않은 소지품을 잃어버리셨다고 다 도둑놈들뿐이라고 하시기도 하는 것을 보며 조금씩 어르신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은 마치 어린아이들과 소통하는 긍정적인 마음과 섬세한 감정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매우 놀란 적이 있었는데 아침에 어르신을 모시러 차를 몰고 가는데 치매가 약간 있으신 어르신이 큰 도로에 나와 배회하시며 겁에 질린 모습으로 두리번두리번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되었다. 집에 계셔야 할 어르신이 미리 나오셨다. 얼마나 놀랐는지 ‘조금만 늦었으면···.’ 생각만 해도 심장이 푹 꺼지는 것 같다.

근무 6개월 지났을 무렵 한 어르신이 등원하시며 집 열쇠를 어디에다 두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으신다고 했다. 우울증 증상을 보이시며 “이제 죽어야지” 하시면서 자책하시기에 “어르신 이렇게 건강하신데 그런 말씀 하시지 마세요. 어딘가에 있을 테니 하원하시면 따님과 함께 찾아보세요”라고 말씀드리고 다음 날 여쭈어보니 찾으셨다고 웃음 지어 주셨다.

이 일로 해서 그때 어르신께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위로의 말을 해준 게 정말 고맙다며 꼭 식사 한 끼 사고 싶다고 하셨다. 큰 도움을 드린 것도 아닌데 관심을 두는 말 한마디에도 큰 위로가 된 것 같다. 혼자 계신 어르신들이 많이 외로우시겠다고 생각하였다. 어르신들에게 더 관심을 두고 말벗을 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체기능을 위한 시간 풍경 /박철종

어느 날은 신체기능을 위한 공 체조 시간에 한 어르신이 공을 떨어트려 주우려고 일어섰다 다시 앉으시면서 힘없이 한쪽으로 넘어지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휴식 시간에 누우셨다가 일어나시면서 비틀거리는 분도 계시고 사물함에 소지품을 꺼내 신는다고 앉으셨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중에 가장 신경 써야 하고 위험한 것이 워커를 사용하시거나 동행 이동해야 하는 어르신들이 돌발적으로 혼자 일어나셔서 이동하시는 일이다. 간혹 선생님들이 못 보게 되는 경우 낙상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한시도 어르신들한테 눈을 뗄 수가 없다.

평상시엔 신체기능이나 인지 상태에 도움이 필요 없으실 정도로 건강하신 어르신이라도 그냥 지켜만 보았던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던 일이다. 그동안 나는 어르신들의 신체기능이나 인지 상태를 내 판단으로 기준을 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시지만, 어르신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 못한 것이다.

내가 어르신 입장이 되어 볼 수는 없는 건지 인터넷에 자료를 찾아보았다. 어르신들의 신체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노인 체험 키트를 판매하는 것이 있었다. 요양보호사 공부할 때라도 저런 체험을 해 보았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근무하는 센터는 무엇보다 인지 학습 위주로 프로그램이 되어있어 밤새 정보를 찾으며 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지식에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설레기도 하고 어르신들의 뇌 건강이나 치매에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열의로 피곤함도 잊으며 하루하루 보람차게 지내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에 실소(失笑)를 짓기도 한다.

어르신들에게 낙상 사고는 사망 위험이 높은 치명타라고 한다. 올가을은 유난히 기온이 떨어져 어르신들 옷차림이 벌써 무거워졌다. 거동하시는 데도 불편한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저녁으로 송영(送迎)하다 보니 곧 다가올 겨울이 걱정이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어르신들과 2025년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고 싶다. 이러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간절하게 기도하며,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 같은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