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초고령사회의 바람직한 실버타운

[손웅익의 건축마실] 현실과 동떨어진 인구 감소 지역의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

2025-01-13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감천문화마을 /그림=손웅익

오래전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실버타운을 지으려는 의사, 시행사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안성, 예산, 가평 일대 자연경관이 수려한 땅을 찾아다녔다. 30여 년 전이니 내 나이 30대 중반의 일이다. 그때는 실버타운에 대한 서적이나 마땅한 자료도 없어서 일본 서적을 구해서 공부했고, 일본에서 운영 중인 시설을 몇 군데 답사한 것이 실버타운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그 시절 여러 군데 검토했던 실버타운 중에 실제로 완성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현장답사하고 기본 설계도를 만들고 시행사와 협의하면서 용역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중에 어느 하나라도 성사되었다면 지금 내 건축 인생에 큰 오점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나는 고령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실버타운에 대한 지식도 일천했다. 즉, ‘노후에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수려한 자연경관이면 실버타운의 충분조건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대부분 실버타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절이기도 했지만 노인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시행사도 많았다. 즉, 자연경관이 수려한 지역에 실버타운을 짓고 분양을 마친 이후에 시행사가 입주 보증금을 들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입주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오도 가도 못하고 그 실버타운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런 상황에 부닥친 실버타운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골프장과 스키장이 인근에 있고 전망도 좋은 산속에 자리 잡은 실버타운이었다. 당시는 겨울이었는데, 입주하신 어르신들이 전부 식당에 모여 있었다. 난방이 안 되어 객실에 있기 어려운 상황이라 식당에 난로를 피우고 모여 계셨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서 그곳을 떠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식사도 그분들이 돌아가면서 준비한다고 하셨다. 노후에 편안한 삶을 꿈꾸고 입주한 실버타운에서 고통스러운 노후를 보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 되었다.

최근 정부에서는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 문서에 건축법에 명시된 ‘노인복지주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시니어 레지던스’라는 국적 불명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활성화 방안 중 주의를 끄는 것은 전국 89개 인구 감소 지역에는 분양형 실버타운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분양형 실버타운에서 보증금 먹튀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그러자 2008년부터는 분양형 실버타운을 허용하지 않고 임대형으로만 가능하도록 법을 바꾸었다. 그러나 최근에 고령자 인구가 증가해서 실버타운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는 이유로 인구 감소 지역에 한해서 분양형을 허용하겠다는 것이 정부 활성화 대책의 골자다.

분양형 실버타운을 허용하면 사업자들이 농어촌지역에 실버타운을 지을 거라는 희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령자만 살고 있고, 생활 인프라가 다 사라진 지방 인구 감소 지역에 분양형 실버타운이 가능하겠는가. 즉 최근에 발표한 정부의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다.

도시 이미지/ 그림=손웅익

초고령 사회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는 전국이 실버타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농어촌 마을을 다녀보면 젊은 층이 거의 없다. 고령자들만 사는 마을은 해마다 빈집도 자연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전국에서 인구 감소 지역이 89개라는 숫자는 의미가 없다. 장래 대한민국이 인구 소멸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더 큰 문제는 이미 초고령 사회가 되어버린 농어촌 어르신들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의료시설 부족이겠지만 그 외에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근린생활시설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예를 들면 도시에서는 넘쳐나는 일용품 등의 소매점, 일반음식점, 제과점, 이용원, 미용원, 의원, 치과의원, 한의원, 금융업소, 목욕장 및 세탁소 등을 농어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지방 인구 감소 지역에 가장 시급한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분양형 실버타운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고령자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 지원시설과 생활환경 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