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메우던 전문의 7개월간 1729명 사직

전공의 이탈 여파, 전문의 사직 1년 새 2배 필수의료과 약 4배 증가···의료 공백 우려 지방병원 인력난 심화···지역 의료 위기 가중

2025-01-07     김정수 기자
지난해 2월 전공의 이탈 후 7개월간 전국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172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7개월간 전국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172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과와 지방 병원 전문의 이탈이 특히 가속하면서 의료 공백 심화가 우려된다.

7일 보건복지부가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전국 88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의대 교수 등 전문의(전임의 제외)는 1729명이었다. 전공의 이탈 이전인 2023년 같은 기간 사직한 전문의는 865명으로 약 2배로 늘어났다. 전문의는 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실시한 전문의 자격시험에 합격한 의사를 말한다.

이들이 수련병원에서 사직하는 이유는 지난해 2월 전공의 이탈 이후 근무 환경 악화, 과로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강의실을 이탈한 뒤 대학병원 전문의들은 연구와 교육을 뒤로하고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진료에 매달렸다. 일부 필수진료 과목의 경우 주간 외래진료를 담당하면서 주 3회 야간 당직까지 맡아야 했다. 하지만 의료 공백이 1년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과로 등 업무 부담을 호소했다.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교수가 어떻게든 욕심내서 진료에 매달리고 있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단기간은 몰라도 장기화가 될수록 힘들다. 인력이 없으니 직접 주말에 나와 응대했다. 휴일에도 나오다 보니 내 생활이 안 되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2026년도를 논의해야 하는데 결국 중증 환자 위주로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상급종합병원에 다녀야만 하는 중증, 희귀질환 등 환자들과 그 담당 의사들은 해결책이 안 보여 지쳤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근무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은 병원이나 동네 의원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 소속 교수는 동아일보에 "지방 수련병원의 교육과 근무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이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피라미드 구조로 젊은 인력이 많이 유입돼야 진료와 연구가 모두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필수 의료 과목 전문의 사직은 증가 폭이 더 컸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2023년 3월부터 10월까지 38명 사직했으나 지난해엔 137명으로 약 3.6배로 늘었다. 신경외과 사직 전문의는 2023년 20명에서 지난해 81명으로 증가했다.

새 학기를 앞둔 매년 2월은 전문의 채용 시즌이라 이탈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필수 의료 과목이나 지방 병원들엔 인력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창민 전국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공의 이탈 이후 바뀐 근무 환경에 따라 전문의들도 각자도생하고 있다"며 "의료 공백이 크게 발생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했다.

경상권 국립대 병원의 한 필수진료 과목 전문의는 ‘최근 전문의 사직 현황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이제 전문의들이 사직해도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라며 "지난해 상반기에도 같은 과 5년 차 전문의가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젊은 전문의 사이에서 ‘탈출할 수 있을 때 나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고 했다.

충청권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의 한 교수는 "요즘 인플루엔자(독감)가 유행하면서 환자가 많이 늘었는데 응급실 의료진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며 "의료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다"고 덧붙였다.

지역 의료 위기도 심화됐다. 세종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2023년 3∼10월 8명에 그쳤으나 지난해 3∼10월에는 8배 이상인 69명으로 늘었다. 광주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문의도 2023년 10명에서 지난해 51명으로 증가했다. 경상권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전문의 공급에 한계가 있어서 지역 대학병원은 채용을 진행해도 충원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5대 대형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이 빠져나가는 전문의들을 다른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연쇄적인 의료진 이동 현상이 발생하고 지방 병원에는 인력난이 가중된다는 우려도 있다. 수도권 대형 병원의 한 교수는 "5대 대형 병원은 급여를 올리고 적극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남권 국립대 병원의 한 교수는 "소화기내과와 마취과 등 여러 진료 과목의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2월 이후엔 응급환자도 진료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