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아들은 멀리 사는 친한 이웃이다

[송미옥의 살다보면2] 고국 방문길에 나선 호주의 아들 가족이 이집 저집 초대되어 가족의 정을 나눴다 오랜만이라도 가족 만남은 1박2일이 적당?

2025-01-12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호주 사는 아들네의 방문으로 올해의 새해는 남다르다. 어느새 손주들의 엄마 아빠네, 친척집 초대에만 열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방놀이터에 간 아들과 나의 친손주(왼쪽) 외손주(오른쪽)들 /사진=송미옥

“언니야, 조카네 안동 와서 먹을 음식은 뭐뭐 해놨어?”

“음식? 뭔 음식? (김장김치 있고 아침용 소고깃국 끓여놨다만.)

오후에 도착하면 저녁 배달시켜 먹고, 자고,

다음날 가까운 온천 갔다가 외식하고,

뒹굴다가 저녁 또 배달시켜 먹고, 자고,

그다음 날부턴 즈들끼리 돌아다니라고 선물로 호텔 방 얻어 줬지렁.“

내가 랩 하듯 말해주니 동생은 한숨을 쉬며 몇 년 만에 만나는데 이웃 대하듯 하냐고, 집에서 재워야지, 집밥을 해줘야지, 무심하다느니 어쩌니 푸념을 한다.

“엄마, 한국 가면 삼시세끼 배달 음식 시켜 먹어 보고 싶어.”

“할머니, 학교 학원 안 가니 종일 누워서 오락만 하게 해 주세요.”

그런 소박한 소원을 성취하고 첫날밤을 잔 어린 손자가 말했다.

“할머니, 방바닥이 딱딱해서 허리가 아파요.”

띠용~ 노인이 허리 아픈 건 알겠다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호텔 방을 예약해 놓은 건 신의 한 수라 생각한 터였다.

두 남동생들이 찾아낸 게임. 모두를 집중하고 화합하게 만든 깡통 굴리기와 계란판으로 하는 놀이는 정말 재미있었다. /사진=송미옥

나의 손님 접대가 못 미더운 동생들은 몇 달 전부터 조카 가족들을 위해 색다른 잔치를 준비했다. 아들 가족은 안동 친가를 떠나 이집 저집으로 초대되었다. 며느리에겐 어색했을 시가 쪽 친척인데도 잘 어울리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며칠을 대식구의 밥상을 준비하고 잠을 재우는 일, 그 힘든 일을 추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집 안주인인 올케다. (아래 사진-녹색 셔츠를 입은 여인-이 자리를 빌려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탁구공을 살살 던지면 통통 튀어서 계란판으로 들어간다. 잘 안 들어가기도 하니 아슬아슬, 재미있다. 점수대로 ​​​​​​​계란​​​​​​​​​​​​​​​​​​​​​판 안에 적힌 ​​​​​​​상금을 받는 놀이다. ​​​​​​​​​​​​​​/사진=송미옥

오랜만에 고국에 온 조카네가 사촌들이랑 집밥도 배달 음식도 맛보며 한껏 놀다 가라는 것이다. 아이 어른 모두 참여하여 웃게 만든 흥미진진했던 오락 시간은 아이들에게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개인주의로 살아가는 요즘 세대들에게 힘들 때 기댈 곳이 가족이란 것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동생 부부의 마음이 보였다. 헤어지는 날 아들은 사랑을 맛보여 주셔서 고맙다며 그들을 안고 펑펑 울었다.

며칠 동안 함께 부대끼며 끝까지 즐거웠다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다.

김승옥 작가가 어느 단편집에 쓴 글이다. '모녀와의 모자와의 오랜만에 상봉은 첫날만 요란해서 기쁨에 들뜬다. 다음날엔 집안의 여러 가지 일과 안부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고, 다음날엔 어머니 특유의 나무랄 데 없는 잔소리가 시작되고, 다음날엔 딸과 아들 특유의 신경질이 되살아나며 마지막으로 모녀 모자는 한바탕 크게 싸운다. 다음날 보따리 챙겨 새벽 버스에 오르면 어머니와 자식은 미어지는 슬픔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니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는 만남도 가족은 1박2일이 최고로 좋다.'

나 역시 아들과 애틋한 정도 잠시, 이틀이 지나면 쌈질하던 나는, 나이 들수록 자식과 케케묵은 애증으로 슬픔을 퍼 올리는 일은 없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식들이 결혼한 이후론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이번에도 아들과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단계에서 끝났다. 떠날 때까지 좋은 사이로 지낼 것 같다.

스키를 배우고 싶다던 손주들은 이틀 만에 익혀서 하강하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사진=송미옥

내가 바라는 직계가족은 참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 세상 어디에서 살아도 성실하고 사이좋은 젊은 부부, 그들의 아이들, 그리고 먼 이웃 할머니가 가끔 안부를 나누며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친한 사이,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는 사이, 그만하면 좋은 관계라 생각한다. 또 다른 여행지에서 찍은 아들 가족의 풍경 사진이 고맙고 감사하다는 문자를 동봉하고 날아든다.

“하이고, 젊은 부부도 아이들도 참 잘 생겼다. 뉘 집 자식들인지, 호호호···”

복주머니 열 듯 폰을 열어보며 바보처럼 혼자서 중얼중얼 히죽히죽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