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아보하’ 되시길 바랍니다!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2025년을 기대한다

2024-12-31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누구나 내일이면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 모두가 각자의 기원을 가지고 말이다. /unsplash=Ioann Mark Kuznietsov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때 카톡 메시지나 이메일 마지막에 ‘오늘 하루도 무탈하길!’이라는 인사를 남기곤 했다. 아마 당시 나도, 내 주변 이들도 쉽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리며 고단한 일상을 보냈던 때였을 거다. ‘큰 질병이나 사고 없이 지내시길’이란 인사는 그럼에도 즐거운 맺음말은 아니기에 어느 시기 이후에는 그 인사말로 내용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2024년 마지막 날인 오늘,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모두가 알 거라고 생각한다. 마침 매년 연말이면 출간되어 곳곳에서 인용되는 〈트렌드코리아 2025〉(김난도, 전미영 외 8명 저/미래의 창)에서 제시한 내년의 키워드 중 하나가 ‘#아보하’다.

‘험한 세상, 오늘 하루 무사히 넘어간 것에 감사하며, 내일도 오늘 같기를 바라는 마음, 특별히 좋은 일이 없어도, 행복한 일이 찾아오지 않아도, 안온한 일상에 만족한다’며 책은 ‘#아보하’를 설명한다. 

‘아주 보통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있었는데,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여러 번 깨닫는 요즘이다. 2025년을 이렇게 서로에게 ‘무탈한 하루’를 기원하며 시작해야 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며칠 전 모처럼 큰아버지 내외분들과 사촌들을 만나기로 한 점심 약속이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명동에 나갔다. 휴일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대기자로 꽉 차 있었고 어디를 가든 편히 쉬실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옛 생각을 떠올리며 일부러 명동을 약속 장소로 잡으신 것 같았는데 복잡한 분위기가 낯설기만 한 어르신들은 식사를 하시자마자 제대로 말씀도 나누지 못하시고 서둘러 헤어지셨다. 그러고 나서야 ‘이렇게 다 같이 한 자리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사진이라도 찍어둘걸’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분들이 다 함께 자리했을 때 찍었던 사진이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는지 궁금해 휴대폰 사진첩을 뒤로 뒤로 스크롤하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가장 크게 느끼게 해주는 건 역시 부모님, 그리고 가족이다. 올해와 달라질 내년을 위해 조금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작년 딱 이맘때 미국에 사는 올케와 조카가 몇 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동생이 하늘로 떠난 지 4년째 되는 해였다. 지금은 나보다 두 뼘은 더 커버린 조카가 눈에 밟혀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마음이 바빴다. 가족사진도 찍고 친지분들 모시고 식사 자리도 가졌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경추 수술을 하시기 전이라 경도성 인지장애가 있기는 하셨지만 특별히 불편한 점 없이 서울 여기저기를 함께 다니며 회포를 풀었다. 그보다 한 해 전인 2022년 연말에는 호주에 사는 셋째 큰집 사촌 동생 식구들이 한국에 와 한자리에 모인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어르신들 모습은 지금과 달리 허리도 꼿꼿하시고 주름도 덜 보인다. 얼굴이 불콰하게 약주도 나누면서 말씀도 많이 나누셨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외출하기도 쉽지 않게 되셨고, 올해만 해도 각 집에서 한 분씩 병원을 들락거리며 수술과 입원을 하신 터라 기운도 예전 같지 않으시다.

2021년 겨울에는 아버지의 팔순 잔칫상을 차렸다. 집안 어르신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고 ‘산수연(傘壽宴, 80세가 됨을 축하하는 잔치)이라고 멋지게 적힌 현수막 앞에서 모든 가족이 일렬로 서서 축하하며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리고 그 전 해에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잃었다. 

어제와 오늘은 이렇게 다르구나. 어제가 있기에 그 시간을 기반으로 오늘이 되지만 오늘의 시간을 살며 다가오는 내일을 예측할 수는 없다.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기를, 아니 적어도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지내는 것뿐이다.

물론 그것 역시 가만히 있는 이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요 몇 년의 시간을 거치며 알았다. 아무것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최선의 삶을 생각하며 그곳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무탈’해 ‘평온’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