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충돌한 '콘크리트 둔덕' 논란···해외에선 인명피해 우려 재설치
구조물 튼튼해 참사 피해 키워 활주로 수평 맞추기 위해 쌓아 美, 속 빈 철골 형상으로 재설치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최종 충돌한 콘크리트 구조의 로컬라이저(방위각·착륙 유도 안전시설)가 인명 피해를 키운 대상으로 지목된다. 해외에선 비슷한 콘크리트 로컬라이저를 ‘오버런’(활주로 이탈) 사고를 우려해 쉽게 뚫고 지나가게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참사는 조류 충돌→동체 착륙→구조물 충돌 순으로 전개됐는데 조류 충돌은 빈번하고 동체 착륙도 비상 상황에 있을 수 있지만 구조물 충돌은 극히 이례적인 사고로 드러났다. 충돌 후 폭발이 이어져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구조물은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끝에서 300여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구조물은 2m 높이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흙더미로 덮여 있으며 그 위에 설치된 로컬라이저까지 포함하면 4m 정도 높이다. 활주로 바깥쪽에는 도로만 있을 뿐 민가는 없다.
공항 측은 지난해 로컬라이저의 내구연한(15년)이 끝나 장비를 교체하면서 기초재를 보강했다. 활주로 종단 이후 지면이 기울어져 수평을 맞추기 위해 흙 둔덕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컬라이저는 활주로의 중앙선과 수직을 이루도록 하여 배치돼야 항공기가 제대로 활주로 중앙 정렬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높이를 맞출 때도 비행기가 쉽게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철골 구조물이었다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였을 것이라는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해외 항공 시설물 설치 업체인 '밀러드 타워'(Millard Towers Ltd)는 캘리포니아 미라마의 미 해병대 항공단 활주로에 무안공항과 같은 양식의 둔덕 콘크리트 매립형의 로컬라이저를 홍보물로 소개했다. 회사 측은 활주로 종단 안전구역(RESA)에 관한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는 시설물이라 시설 업그레이드 중 겸사겸사 둔덕을 밀어버리고 속이 빈 철골 형상으로 재설치하게 된 일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밀러드 타워는 "깨지기 쉬운 3m 높이의 섹션이 캣워크와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고정하는 기둥을 모두 지지했다"며 "지지 타워와 캣워크는 모두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자외선으로 인한 열화에 강하고 가벼운 설루션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의 경우 활주로 종단 너머 공간까지 전부 수평으로 돼 있어 둔덕이 없이 7.5cm 이하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상으로 나와 있다. 지난 2016년 인천공항에서 UPS 화물기가 랜딩기어 파손으로 오버런을 해서 로컬라이저와 충돌했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당시 UPS 화물기에는 조종사 1명을 포함한 승무원 5명이 타고 있었으나 사고 직후 모두 기체를 빠져나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 원장은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활주로) 끝에 있는 둔덕은 어느 공항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둔덕 너머에는 항공기가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즉 콘크리트 구조물이 없었더라면 비행기는 동체 착륙으로 무리 없이 멈췄을 것이라는 뜻이다.
공항 측이 구조물 설치 규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현행 '공항안전운영기준 제42조 제1항 제4호'는 활주로 안전에 관해 "불법 장애물이 없을 것. 다만, 설치가 허가된 물체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기초구조물이 지반보다 7.5㎝ 이상 높지 않아야 하며, 물체는 부러지기 쉬운 구조로 세워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이 규정은 올해 1월 11일 시행된 것이어서 소급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2022년 6월 21일 제정된 '국토교통부 예규 항공 장애물 관리 세부 지침 제25조'에 따르면 로컬라이저 안테나 등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공항 장비와 설치물의 종류는 항공기가 충돌했을 때 최소한의 손상만을 입히게 돼있다. 평시 구조적 통합성과 견고성을 유지하다, 그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항공기에 최소한의 위험만을 가하면서 파손·변형·구부러지게끔 설치돼야 하는 것이다. 또 이를 지원하는 시설은 부러지기 쉬운 장착대에 장착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무안공항은 활주로에서 로컬라이저까지의 거리는 251m로, 위치는 국내법 및 국제민간항공기구(IACO) 법에 의한 비행장시설 설치 기준을 만족한다.
전문가는 참사 책임을 아직 단정 짓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오권석 한국항공교통학회 총무이사는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무안 공항 활주로 끝에 그렇게 콘크리트가 있을 필요가 있나, 다른 게 있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공항 설치 기준을 봐야 할 것 같다"며 "설계할 때 다 기준에 맞춰서 한 거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설치 기준에 통과하지 않으면 운영을 못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날 '무안 여객기 사고 관련 브리핑'에서 “방위각 시설을 어떤 토대 위에 놓냐는 공항별로 다양한 형태가 있다”며 “콘크리트 구조물도 그중 하나다. 정해진 규격화된 형태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방위각 시설은 설치 규정에 따라 세워지며 재질이나 소재 제한 등이 있는지 면밀히 점검하겠다"며 구조물이 사고의 규모를 키운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블랙박스와 비행 기록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도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