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이기면 된다"는 트럼프의 '선택적 보호무역주의' 사용법
대미·대중 수출 의존도 동시에 높은 한국 한·일·대만 경제동맹 같은 다자 전략 필요 반중 정책 굳이 따라갈 것 없다는 의견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편·보복 관세 정책은 자유무역의 원칙을 뒤흔든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보호무역 조치로 치부하기보다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무역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해석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30일 블룸버그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1월 20일 출범 예정인 트럼프 2기 정부는 특정 타깃을 겨냥해 순차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7월에는 현행 11.7%에서 20.2%로, 2026년 9월에는 36.2%까지 인상될 것으로 관측된다. 품목별로는 전기차, 철강·알루미늄, 전기차용 배터리, 반도체, 태양 전지 등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시절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100%로 인상하고 철강·알루미늄 및 전기차용 배터리 관세를 각각 25%로 올린 바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확대하며 미국 내 생산라인 설치를 장려했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까지 수정 또는 폐지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물론 IRA 폐지 움직임은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들은 미국에 생산라인을 설치하며 약 302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기대했으나, 트럼프의 정책 변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졌다.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60~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아이폰과 테슬라 등 미국 기업조차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 호응한 강경 기조는 2026년 11월 중간선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의 무역 정책은 바이든 정부 때보다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역적자 축소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관세 정책은 브래튼 우즈 체제 붕괴 이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강화하려던 1980년대 레이건 시대의 산업 보호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레이건 행정부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같은 다자간 자유무역 체제를 지지한 점과 자유시장경제 질서 신봉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발탁된 상황을 고려하면 트럼프 2기의 관세 정책의 부정적 효과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미국 교역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낮춘다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도 관세 인상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나아가 "다른 국가들이 무역에서 일정 부분 양보한다면 자유무역의 길이 다시 열릴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 입장에서 선택적으로 보호무역 조치가 대미·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아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 시장만을 선택하기 어려운 한국에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매기는 상계관세가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발등을 찍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종합하면, 경제 정책 전문가들은 보편 관세에 대해 일본·유럽연합(EU)·캐나다·멕시코 등 비중국 진영과 공동 대응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무역 질서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다자주의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응해선 트럼프의 관심사인 가스·농산물 구매를 확대하는 동시에 조선업과 원자력 분야 협력을 통해 대미 협상 레버리지를 조기에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여성경제신문에 "한국, 일본, 대만 간의 최첨단 산업 경제 동맹을 출범시킬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며 "3국 통합 국내총생산 7조 달러, 1인당 GDP 3.5만 달러, 2억 인구를 가진 새로운 선진시장을 출범시켜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축소시키고 인도·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 진출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