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은행이 금융당국을 고소하다니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바이든 출범 후 연준 눈치 보던 美 은행들 트럼프發 규제 완화 바람 타고 연준 고소 연준-트럼프 갈등 끝 타협, 금융위기 씨앗

2024-12-30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이후 미국에 규제 완화의 열풍이 불고 있다. 그는 우선 작은 정부와 시장 자유를 신봉하는 민간 출신 인사들을 주요 부서 장관 자리에 선임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할 재무장관에는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를 선임했다. 국방장관에는 폭스뉴스 앵커 출신의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를 지명했다. 통상과 산업정책을 주도할 상무장관에는 투자은행가 출신의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을 지명했다.

트럼프는 재무장관에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스콧 베센트를 선임했다. /AP=연합뉴스

하이라이트는 일론 머스크의 발탁이다.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한화 약 4000억원을 쾌척한 머스크를 규제개혁을 주도할 정부개혁부(DOGE)의 공동 수장으로 앉혔다. 온라인은행인 페이팔을 설립한 경험이 있는 머스크의 첫 번째 규제개혁 대상은 금융감독 당국이었다.

머스크는 금융사의 횡포로부터 소비자와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금융소비자보호국(CFPB)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폐쇄를 거론했다. 아마도 트럼프와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우선 자본시장을 감독할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암호화폐 지지자이자 규제 완화론자인 폴 앳킨스(Paul Atkins)를 지명했다. 일차적으로 금융감독의 실무를 담당하는 FDIC와 SEC에 '규제 완화에 협조하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다'라는 경고음을 날린 셈이다.

FDIC와 CFPB의 폐쇄를 운운하며 으름장을 놨지만 은행 금융감독의 최고봉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가장 강한 연방준비제도(연준·Fed)다. 연준이 강하게 버티면서 은행을 감독하는 한 트럼프가 원하는 수준의 규제 완화 효과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바이든은 마이클 바(Michael Barr)를 연준의 감독 업무 담당 부의장으로 임명해 은행 감독을 강화하려 했다. 바 부의장은 연준의 대형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기준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은행의 자기자본 규제를 강화했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본래 은행이 여러 가지의 가상 시나리오를 수립해 리스크를 산정하는 내부적 리스크 관리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은행의 리스크 관리 실패와 도덕적 해이로 인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에 대한 자성으로 2010년 제정된 도드 프랭크(Dodd-Frank) 금융개혁 법안은 자산규모 500억 달러 이상의 대형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의무화했다. 테스트는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됐는데 실업률과 경기 침체 그리고 시장 충격 등을 감안해 정상, 주의, 요주의 상태로 구분된 시나리오에 따라 자본 적정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은행은 각각의 시나리오 하에서 자본 적정성을 충족할 수 있음을 보여야 했다.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집권하자 은행 감독 규제를 완화했다. 스트레스 테스트 대상도 자산 규모 50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로 높였다. 또한 테스트 기준도 은행의 규모와 리스크 상태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하도록 했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기자 JP 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은행이 은행정책연구원이라는 대행 기관을 앞세워 연준을 법원에 고소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더불어 이듬해 진보적인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 스트레스 테스트 기준을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스트레스 테스트 대상을 트럼프 집권 이전으로 다시 확대했다.

또한 테스트 기준을 더 엄격히 해 자본 적정성과 더불어 유동성 기준도 중소 규모 은행과 지방은행에 적용했다. 심지어 기후변동 위기 요인도 테스트 과정에 고려하도록 했다. 연준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강화하자 은행의 불만은 높아졌다. 하지만 은행은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는 일단 숨을 죽였다. 힘센 금융당국과 맞서서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규제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기자 은행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JP 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은행이 은행정책연구원이라는 대행 기관을 앞세워 연방준비제도를 법원에 고소했다. 원고인 은행단은 연준의 스트레스 테스트의 진행 과정에서 투명성이 결여됐고 적절한 행정 절차에도 부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로 인해 자본 적정성 관리에 불확실성이 증가했으며 여신과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수시로 스트레스 테스트 기준을 바꿔 부담을 증가시켜 온 연준의 행태를 감안하면 은행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피감독기관이 금융감독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다 은행 유관기관인 미 은행연합회와 상공회의소까지 원고로서 소송에 동참했다. 평소 같이 은행이 정부의 눈치를 본다면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역으로 트럼프 정부가 얼마나 규제 완화적일 것인지, 은행이 트럼프 정부의 규제 완화를 얼마나 확신하고 환영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비트코인 매수 가능성을 묻자 그럴 의사가 없다고 단호히 말함으로써 전략적 자산으로서 비트코인 매입을 추진하는 트럼프의 심기는 신경 쓰지 않음을 보여줬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트럼프가 조속히 금리 인하에 나서도록 연준을 압박하면 백악관과 연준 간의 갈등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양자 간에 감독 관련 이견까지 추가되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연준이 비트코인을 소유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와 경제 정책 면에 있어 꾸준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연준은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어느 정도 버티려고 하겠지만 결국은 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규제 완화의 흐름은 커질 것이다. 그로 인해 은행의 리스크 감수와 도덕적 해이가 확산하고 헤지펀드나 암호화폐 시장의 분산금융(디파이, DeFi)을 포함 섀도우 뱅킹(그림자 금융)까지 가세하면 금융위기의 씨앗이 자라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은행은 실적을 높이기 이전에 리스크 관리의 건전성을 다각도로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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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