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더봄] 은퇴 후 어떤 일을 하든 자족한다면 - '퍼펙트 데이즈'

[강신영 시니어 입장가] (29) 완벽한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일까? 도쿄의 공중화장실이 깨끗한 이유

2025-01-11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도쿄 토일렛'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차에 청소 용구를 갖추고 다니며 정해진 화장실 청소에 임한다. 그의 젊은 후배는 어차피 화장실은 다시 더러워지므로 대충 일하라고 하지만, 그는 안 보이는 구석까지 거울을 비춰가며 자기 집 화장실 변기 청소하듯 열심히 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포스터

오늘도 그는 운전하면서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 잔을 마시고, 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는다. 종종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영화는 거의 2시간 동안 이 장면들이 지루하게 반복된다. 이건 뭐지? 하는 생각에 잘못 선택한 영화인가 후회하려는데 가만히 보니 주연으로 나온 남자 야쿠쇼 코지의 중량감이 뭔가 있어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영화 <쉘위댄스>에 주연으로 나온 남자 배우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늙어가다가 어느 날 댄스학원 여자 강사에게 꽂혀 댄스를 배운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우리나라의 안성기 같은 국민배우다.

이 영화는 독일 감독 빔 벤더스가 만들었고 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 딸이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한창 사춘기 때라 호기심도 많고 반항심도 있는 나이다. 며칠 같이 다니면서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며칠 지나자 이 맹랑한 조카의 어머니인 여동생이 찾아와서 조카를 데려간다.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잘 사는 집이다. 그러면서 오빠에게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하고 있느냐며 야릇한 표정을 하고 떠난다. 딱하다는 건지 한심하다는 건지 모를 표정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단골 식당의 여자 주인이 어떤 남자랑 음침한 장소에서 포옹하는 것을 보지만, 못 본 척한다. 나중에 그 남자가 와서 사실은 전 남편인데 시한부 생명이라며 이해해 달라고 한다. 

젊은 후배 청소부는 철없는 여자아이와 데이트하는데 그날이 동침할 디데이라고 하자 데이트 비용도 빌려준다. 여자아이는 허락도 없이 히라야마의 CD 테이프를 가방에 넣어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히라아먀는 못 본 척 자기 일만 한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할 때도 많다. 오히려 사무라이 같은 일본 남자배우들의 공격적 대사보다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일본영화다.

그렇게 남들은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히라야마는 비록 공중화장실과 변기 청소를 하고 다니지만 불만이 없다. 완벽한 나날들인 것이다. 지난번 일본 출장 때 히메지성 화장실에 가 보면서 히라야마 같은 사람이 있어 그렇게 공중화장실이 청결하게 잘 유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나이 들수록 남의 눈치 안 보고 자기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