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법안 이견에 반도체업계 '글로벌 강국' 숙원 진통

주 52시간 적용 제외 조항 갈등 해외, 연구개발 인력 유연 적용

2024-12-26     이상무 기자
 26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 등 안건을 심의하기 위한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업계가 조속히 통과되길 바라던 ‘반도체특별법’이 사실상 내년으로 미뤄질 수순을 밟게 됐다. 보조금과 세제 혜택만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반쪽짜리만 이달 중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2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본회의에서 AI(인공지능) 기본법 재정안 등 비쟁점 법안 20여 개가 통과됐다.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은 상임위원회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여야는 이날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안건심사위원회에서 반도체특별법을 논의했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근거, 연구개발(R&D) 종사자의 주 52시간 적용 제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등을 담고 있다. 

여야는 반도체특별법 처리에 공감대를 어느 정도 형성했다. 여야 모두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등 재정 지원 근거를 담는 것에는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의 핵심은 일부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예외 인정 조항이다. 국민의힘은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주52시간 예외를 인정하자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R&D 업무가 반도체 업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계의 반발과 연계해 맞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한국 기업이 국내 장시간 노동으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며 “지금 삼성전자의 위기는 임원 주 6일제와 장시간 노동 확대로 돌파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명분으로 재벌 퍼주기, 장시간 노동 체제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노동 악법으로 규정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에선 예외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 경제의 중심축인 반도체 산업은 고질적인 기술 인재 부족을 겪고 있는 데다가 주 52시간제까지 발목을 잡고 있어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 보호를 위해 근로 시간 상한선을 두되,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선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세계 표준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연구센터는 위기 시 하루 24시간, 주 7일간 가동했었다.

최근 삼성전자 임원들은 직접 국회를 찾아 예외가 ‘3년 한시’ 조건이어도 좋으니 통과시켜 달라고 읍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특별법에 따라 주52시간 예외를 도입해도 실제 적용 대상은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5% 수준인 6000명 수준이다. 또한 일부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해도 충분한 휴식 시간 보장, 7일 이상 연속 근무 금지, 과제 종료 후 장기 휴가 등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 사장도 최근 “대만의 TSMC도 엔지니어가 늦게까지 일하면 특근 수당까지 지급하며 야근을 장려한다”며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개발이라는 특수적인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선 주 52시간으로 근로를 제한하는 제도가 부정적인 관행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미 탄력적 근로시간제에서 고려하고 있는 근로일 간 의무 휴식 시간 등 기준을 시행령이 아니라 법에 명시하는 등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 '반도체 첨단산업'을 긴급히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화이트칼라 이그잼션 제도 사례를 거론하며 "이 논의를 민주당이 무작정 외면할 게 아니라 우리도 '고소득 전문직'에 한정해서 근로자 대표 서면합의 등 당사자뿐만 아니라 노사 간 서면합의까지 전제로 하는 조건을 추가로 협상해 대승적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