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배우고 익히되 안 써먹어도 되니 좋다
[송미옥의 살다보면2] 봉두, 평두, 날날하게~ 도시 선생은 어벙벙한데 AI는 너무 잘 아네
도시에서 온 젊은 강사가 한 노인 회관에서 EM 미생물 만드는 설명을 한다.
‘설탕 큰 한 스푼, 천일염 작은 한 스푼···.’
그때 저 뒤에 계신 한 어른이 질문했다.
‘선생님~ 숟가락 크기도 천태만상인데 아무거나 내 알아서 떠도 되남요?’
‘네···’
또 뒤에서 물었다.
‘선생님~ 수북이 담아요? 날날하게 담아요?’
‘네···에?’
‘아니 이 사람아 사투리로 말하면 선생이 못 알아 묵지.
그러니까 봉두로 뜨는가? 평두로 뜨나 말이요?‘
‘네???’
(퍼옴)
이젠 인간 선생도 사라질 판이다. 어떤 학습도 인터넷에 물어보면 되니까. AI는 봉두, 평두, 수북, 날날~ 단어만 치고 이런저런 지시를 하면 설명은 물론 회의 자료나 각종 정보까지 세세하게 알려준다. 거기에 방향을 틀면 역사, 멜로, 판타지 등등 멋들어진 소설까지 써준다. 고민이나 걱정거리 상담도, 말벗도 되어준다. AI는 모른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
저번 주까지 상지대 평생교육원에서 ‘생성형 AI 활용 교육’ 학습과 실기 응용을 배우고 나서부터 문득문득 하릴없는 잡념에 젖어 든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전까지 AI, 메타버스, 챗봇 등등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AI는 지니(모 통신사 기계 이름)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다. 배우고 나니 눈에 보이는 생활 속 모든 것들이 AI의 지배하에 있다.
교수가 내 준 숙제를 반나절 만에 제출하던 젊은 방송대 동기도, 수많은 사진과 함께 그날 일어난 세세한 내용까지 작성해 올리던 여행 전문 불로거도, 호기심으로 클릭하게 만드는 많고 많은 유투버도 모두 AI가 조력자란 걸 알았다.
4주 동안 주말마다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블로그 작성법을 배우고 유튜브 만드는 과정, 사진 합성법, 리포트 쓰기, 보고서 쓰기 등등 온갖 자료 만드는 법을 배워 당당히 수료증도 받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실행은 거의 할 줄 모른다. 그것이 나의 생활에 필요한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문지방을 나서면 잊어버리는 내 지능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나이에 수박 겉핥기식이라도 AI를 활용하는 원리를 배웠으니 다행이다. 직접 조작하고 활용하지 못해도 젊은이들의 대화에 불러주는 건 말귀를 알아들어서가 아닐까.
나이 들면서는 무엇이든 배운다. 배우는 어른은 말씨도 마음씨도 맵시도 덤으로 좋다. 또한 일찍이 많이 배운 사람보다 지금 배우는 내가 훨씬 여유롭고 활기차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열정으로 참여하는 내가 대견하다.
“여러분들 어제 배운 거 기억나요? 문지방 넘어서면 다 까먹는 게 정상이에요. 그래야 오늘 또 채우지요. 지금 이 시간 또 집중해서 따라가 봐요.” 세련된 선생님의 첫인사에 기운이 나고 다 까먹어 주눅 든 어깨도 다시 으쓱해진다.
암만,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선생과 학생이 함께 눈을 맞추며 배워야 즐겁고 재밌다. 누군가의 허튼소리에 크게 웃고 그 배움이 되돌이표가 되어도 마냥 흥미롭다.
내년에도 새로운 학습에 원서를 냈는데 선정되었으니 등록하라는 문자가 들어온다. 에헤야 디야~ 겉모습도 노인~ 성적도 꼴등~ 그러나 수업에 임할 때만큼은 미소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