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중년도 아니고 노인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지금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2024-12-26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

독일 출신의 경제학자 슈마허의 마지막 유작 <굿 워크>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슈마허가 미 대륙을 횡단하며 펼친 강연을 엮은 것으로 그가 여행 도중 사망함으로써 사후에 출판되었다. 그는 책에서 양의 수를 세다가 우를 범하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인생을 살며 수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건 물욕을 버리라는 것이었지만 해가 바뀌는 요즘엔 나이를 세지 말라는 얘기로도 들린다.

어렸을 적엔 어서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으면 하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선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우리 사회 어른들. 그러면서도 손 아래 젊은이에겐 이것저것 가르치려 들며 짐짓 어른 흉내를 낸다. 하지만 나이란 정말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젊은이 중에도 어른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 든 어른 중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우리 사회 어른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른 대접을 받으려는 게 볼썽사납지만 "내가 이 나이에"라고 하며 스스로 무력함을 보이는 것도 보기 안타깝다. 19세기 일본의 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90세까지 장수했는데 그의 일화가 재미있다. 그는 70세 이후에나 자기 그림이 나아졌고 70세 이전의 작품은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임종을 맞이해서는 5년만 더 살 수 있다면 진정한 작품을 만들 텐데 그러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사람들의 욕심은 한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생에 대한 애착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선가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15년쯤 더 살기를 원한다는 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70세 먹은 사람은 85세까지 15년 더 살았으면 하지만, 80세 먹은 사람도 그렇게 원한다는 것이다. 10년은 짧은 거 같고, 20년은 긴 거 같아 15세로 타협한 것이다.

은퇴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점을 감안하면 호쿠사이의 바람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여하간 나이 들어서도 지치지 않는 그의 창작 욕구가 부럽다. 요즘 짐짓 나이 들은체하며 거드름을 부리고, '내가 이 나이에'라며 엄살을 피우는, 중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인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좀 배워야 할 덕목 같다.

연말이 되어 직장에서 퇴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은퇴는 일에서 손을 놓는 게 아니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비로소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때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