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은의 필사(FEEL思)] 보고 있어도 그리운 할머니

외할머니 손에 자란 버릇 없는 손녀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는 외할머니 나이 든 손녀와 외할머니의 추억 쌓기

2024-12-25     최영은 기자

읽은 것을 잃지 않고자 필사를 합니다.

책 속에서 제가 느낀 감정(feel)과 생각(思)을 여러분께 전달합니다.

<그리움 한 스푼> 김정희, 북랩, 2022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 다섯지혜, 2024

 

<그리움 한 스푼> 필사. /최영은

지하철 1호선 부평역에서 갈아타고 용산 급행열차를 타고 출근한다. 노약자 보호석에는 브로콜리 머리를 한 할머니들이 타고 계신다. 꼬불꼬불한 파마머리를 볼 때면 외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외할머니는 맞벌이하는 첫째 딸 부부를 대신해 외손녀를 키웠다. 잘 먹고 잘 자는 순둥이라며 우리 장손녀라며 귀여워했다.

할머니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무럭무럭 옆으로 자란 나는 어느덧 다소 많이 통통한 경도 비만의 어린이가 됐다. 유치원 체육 대회엔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와 동네 할머니들이 왔고 동네에서 커나갔다.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받다 보니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됐다. 할머니는 한겨울에 내복 바람으로 계단 밖으로 내쫓기도 했다. 콧물 눈물 줄줄 흘리며 손바닥을 싹싹 빌고 다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까지 할머니와 살며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너무 하지 않아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다.  5분 거리에 할머니가 살고 계셔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난 뒤에 할머니네 가서 부침개를 먹곤 했다. 결국 고등학교 때 고도 비만이 되어서 교복 치마를 잠글 수 없어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다녔다.

대학생이 되고 이사를 하게 됐고 할머니네와 차로 40분 거리에 살게 됐다. 엄마, 아빠와 살게 된 것이다. 그 생활이 익숙하지 않았고 엄마와 싸움이 잦았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 필사. /최영은

그랬다. 엄마와의 표현 방식이 맞지 않았던 나는 부모님에게 상처 주는 말을 가득하고는 할머니네 집으로 짐을 한 보따리 싸서 들어갔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았고 좋아하는 돼지 목살 김치찌개와 계란찜을 해주셨다. 목구멍까지 가득 차게 먹고는 편히 잤더랬다. 할머니는 그 밤에 잘 주무셨을까? 철없는 이십 대 손녀만 코 골며 잘 잔 밤이었을 거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삼십 대가 되었고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되었다. 할머니는 이제 혼자 사시는데 우리 집으로 놀러 오시곤 한다. 할머니와 산책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목욕탕을 같이 가곤 한다.

동짓날이었던 지난 토요일에는 할머니와 자주 찾는 절에 가서 2025년 달력을 받아 왔다. 할머니보다 앞서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힐끔 보이던 하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아 뒤돌아보니 저만치 뒤에 계셨다. 앉은 자리에서 4홉짜리 맥주 두 병은 거뜬히 마셔도 영락없는 80대의 노인이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 어깨를 짚으라고 할머니 손을 어깨를 올려주고는 같이 계단을 올랐다. 언제까지 할머니와 다음 해 달력을 받아 올 수 있을까? 언젠간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는 시간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움 한 스푼> 필사. /최영은

할머니의 사랑과 음식 덕분에 튼튼하게 자라났지만 할머니에게 해준 게 없다. 가끔 드린 용돈과 발이 편한 운동화. 그게 전부다. 시간이 없다. 할머니에게 선물한 운동화를 신기고 내년엔 여행을 떠나야겠다. 할머니가 계단을 오르는 것을 더 힘들어하기 전에.

김정희의 <그리움 한 스푼>, 다섯지혜의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 책 표지. /북랩, 다섯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