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더봄] 망가져야 좋아한다···모임에서 막춤 췄더니 생긴 일

[강신영의 쉘위댄스] (66) 모두 약점 안 잡히려 할 때 먼저 망가져 주면 열광한다 점잖게 있으면 본전이지만 춤추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2025-01-05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사람들은 점잖게 있어야 남에게 빈틈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남 앞에 잘 나서지도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나서 춤을 추면 열광한다. /사진=강신영

최근 태국에 파크골프 리조트 개장 행사 관계자 여행이 있다고 하여 합류해서 다녀왔다. 30여명이 모였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서먹서먹하기도 했고 각자 자기네 팀끼리만 어울리고 나만 혼자 외롭게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수도 적은 편이고 별로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 혼자 겉도는 신세였다. 쉽게 다가가기도 망설여지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학교 선생님 같은 인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첫날 저녁 리조트 오픈 카페에서 개인 소개 및 장기 자랑이 있었다. 누군가 내가 댄스 선수 출신이라고 귀띔을 한 모양이었다. 평범한 자기소개로 끝내려 했는데 “보여줘~ 보여줘~”하며 굳이 춤을 추라는 요청이 들렸다.

댄스스포츠는 커플 댄스라서 혼자 추기가 곤란한 춤이다. 무대의 바닥도 인조 잔디라서 댄스스포츠 춤을 추기에는 부적절했다. 그렇다고 그냥 내려오기도 쑥스러워서, 이기찬의 ‘비바 내사랑’ 노래를 틀어 달라고 했다. 신나는 차차차 곡이다. 그간 댄스 강사를 하면서 혼자 시범 댄스를 보여줄 때 하던 방식으로 파트너 없이도 응용 동작으로 차차차를 보여준 것이다.

파트너 없이 추는 솔로 춤이라서 파트너가 있으면 잡아야 할 손동작이 중요했다. 음악에 맞춰 스텝은 차차차로 밟고 팔동작은 순발력을 발휘하여 격렬하게 흔들어대니 온통 난리가 났다. 모두 나와서 한바탕 흔들며 앙코르가 나왔다. K-Pop 댄스를 좋아한다는 현지인들도 모두 나와 놀라운 눈초리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날 이 춤으로 장기 자랑 대상을 수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로 트로트 노래로 승부했으나 신나는 음악과 시각적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춤과는 대적 상대가 안 되었다.

그 이후로 내가 지나가면 현지 종업원들이 내 춤 흉내를 내며 같이 사진도 찍자고 하고 식사할 때면 별도로 과일 서비스를 내오는 등 대우가 달라졌다. 같이 있던 한국 사람들도 훨씬 가깝게 대해주며 자기네 방에 놀러 오라고 서로 초대했다.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 중앙 홀에서 첫날 내가 춤을 췄다. 내가 춤을 추는 동안 모든 사람이 주변으로 물러나며 사진 촬영도 하고 박수를 보냈던 것과 비슷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중앙 홀에 나타나면 모두 자리에 돌아가 앉으며 내 춤을 감상하려는 눈치였다. 크루즈 여행 내내 내가 지나가면 같이 사진을 찍자며 다가오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곤 했다.

가만히 있으면 본전, 용기 있게 나서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사진=강신영

발트 3국 여행 갔을 때는 우리 일행이 클럽을 통째로 사용한 적이 있다. 우리 인원이 많으니 다른 손님을 못 받은 것이다. 거기서 그야말로 막춤을 췄더니 역시 난리가 났다. 일행이었던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기에 막춤이니 누구나 아무렇게나 출 수 있는 춤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작이 박자는 맞아야 하는데 박자를 못 타서 안 된다고 했다.

돌이켜 보니 해외여행 때마다 혼자 겉돌았던 것이 후회된다. 지난번 튀르키예 여행 때 일출을 봐야 한다며 새벽에 유람선을 전세 내어 탔었다. 고요한 바다 가운데 선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들은 음악이 마침 좋았는데 그때 선상 덱에서 춤을 추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는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춤솜씨를 한번 보여주면 대우가 달라진다. 모두 점잖게 있는데 이렇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면 다들 열광하게 되어 있다. 점잖게 있으면 본전이다. 그런데 춤 솜씨를 보여주면 점잖은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지만, 그 대신 모두 가깝게 다가온다. 혹시 이미지가 망가졌다고 해서 후회할 필요도 없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볼 기회도 없는 사람들이다. 즐거운 추억이면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