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M.S.G.R! 신조어의 끝판왕인 이것은 무엇?

[홍미옥의 일상다반사]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신조어의 끝은 어디? 최근 M.S.G.R이라는 국적 불명의 음료가 시선을 끄는데···정체 알고 보니 미숫가루

2024-12-16     홍미옥 모바일 그림작가

올해 초 방영된 일본 드라마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등 아시아에서 화제가 되었다. 장르는 인기가 없을 수 없는 '타임슬립' 물이다. 내용은 1986년부터 2024년 현재를 오가는 주인공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이해'와 '관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예를 들면 실내 흡연, 만연한 성희롱, 교사의 체벌 행위 등등은 시간여행 중인 주인공의 눈엔 별거 아닌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2024년 현재는 두말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금기시되는 행동이다.

더해서 서로가 사용하는 '말'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서 혼란스러운 장면도 곧잘 나온다. 40여 년의 시간은 서로를 '부적절'하게 바라보게 되지만, 드라마이니만큼 관용과 이해라는 결말로 끝난다. 그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 예정이라고 한다.

솔직히 아무리 부지런히 쫓아가도 MZ들의 세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신조어'를 앞세운 대화는 도통 이해 불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위의 드라마처럼 그 단어의 부적절도 이해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면 적절(?)해질까?

뭐라고? ASMR 아니고 MSGR라고?

미숫가루를 MSGR로 표시한 메뉴판 앞에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홍미옥, 갤럭시노트로 그림

유튜브 채널을 살피다가 도통 모르겠는 섬네일을 발견했다.

"겨울엔 얼죽코에 얼죽아! 하지만 오늘은 MSGR! 너도 손민수 할래?"

정녕 이것은 외계어일까?

겨우 아는 단어라곤 '얼죽아'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말로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말이다. 해서, 신조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그렇다면 얼죽코는 무엇이며 MSGR는 또 뭘까? 혹시 자율 감각 음향인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오기일까? 음~~손민수는 분명 사람 이름이겠지?

당최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의 조합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이럴 땐 전 국민의 가정교사인 포털 검색 기능이 있으니 문제없다. 채 단어를 써넣기도 전에 똑똑한 자동완성 기능은 그 뜻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얼죽코는 얼어 죽어도 패딩 대신 코트를 입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란다. 알고 보니 별것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최대의 미스터리인 MSGR는 뭘까? 아! 허탈하고 기운이 빠진다.

다름 아닌 미숫가루의 영어 초성 표현이라고 한다. 이쯤에서 살짝 분노까지 이는 이 기분은 뭔지 모르겠다. 그 고소하고 포근한 미숫가루를 이렇게 정 없이 건조하게 표현한단 말인가?

그리고 '손민수'는 드라마 속 캐릭터로 속칭 따라쟁이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뭐든 따라 하는 그런 사람이나 행동을 그렇게 부른다고. 어렵다··· 이 정도면 우리도 '신조어도 정도가 있어'라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발랄하지만 어려운 신조어의 세계

마침내 맛본 MSGR는 역시 고소했다. /사진=유기원

비록 근본 없이 이상한 영문 이니셜로 포장되고는 있지만 미숫가루는 나름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여름철이면 얼음과 함께 냉음료로 사랑받았다. 그런가 하면 전란 때에는 전투식량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전쟁의 조짐이 보이면 피난 준비 식량 중 하나가 미숫가루였다. 그러니까 그 시절의 전투식량이었다. 보리쌀을 쪄서 말린 후 볶아서 만든 가루 식품인 미숫가루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영양 만점의 건강식이다.

내가 알고 있는 동화 같은 미숫가루 이야기가 있다. 언제 누구에게 들었는지 희미하지만, 아직껏 기억하는 걸 보면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내용인즉슨, 전쟁 중에 적군의 식량 약탈을 대비해 곱게 빻은 미숫가루를 되직하게 반죽한다. 마치 도배를 하듯이 방이나 부엌 벽에 도톰하게 바르면 흡사 흙벽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걸 긁어서 물에 타 먹는 거로 전쟁의 배고픔을 견뎠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우습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마운 식품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사실 명칭이야 어찌 부르든 전통 음료가 MZ들에 사랑받고 있다니 한편 다행이다. 어느 날, 20대 아들이 보내온 사진엔 MSGR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미숫가루가 있었다. 당당하게 커피와 인기 메뉴 순위를 겨루고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였다.

우리의 ‘아 보 하’

아 보 하,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줄임말이자 신조어다. 사실 최근에야 알게 된 말이다. 별거 아닌 나의 아보하는 이렇다고 말해본다. 아직은 한겨울이 아니므로 나도 얼죽코에 MSGR를 마실 테니 너도 손민수 해 볼래?

여전히 내겐 어색하기만 한 표현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비난의 시선을 보내기보단 소통이라는 기분으로 접근해 본다. 갑자기 나이가 열 살은 줄어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