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③ 北 해킹수사 협조 거부 노태악 선관위, 탄핵 정국의 뜨거운 감자
헌법기관 독립성이 '보안 점검 거부' 사유? 사전투표 음모론과 다른 尹의 부정선거론 방치하면 국민투표권과 민주 시스템 위협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를 둘러싼 정국 혼란의 와중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12일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관련 두 번째 담화에서 "국가정보원의 안전 점검 당시 다른 모든 기관들은 자신들의 참관 하에 국정원이 점검하는 것에 동의했으나 선관위는 전체 시스템 장비의 아주 일부분만 점검에 응했고 나머지는 불응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폭로했다.
12·3 비상계엄 당시 권력기관도 아닌 선관위에 국회 투입 인력보다 많은 300명 가량의 병력을 투입해 특정 시설의 사진을 찍어갔던 이유를 공개한 셈이다.
올해 4·10 총선 전후 상황을 복기하면 북한의 한국 투·개표 장비에 대한 해킹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이라크가 도입한 한국산 전자투표기를 북한이 해킹해 취약점을 파악하지 않았느냐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에 따르면 북한의 해커조직 라자루스가 2023년 11월부터 공공기관과 언론사 등 61곳의 PC 207대에 악성 코드를 퍼뜨린 게 발각돼 사이버 안보 위기 경보가 발동된 상황이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4·10 총선 전후로 북한의 사이버 해킹 위험이 흐지부지 된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윤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선관위가 국정원의 보안 점검 요청을 거부하면 국민이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선관위의 방만한 관리와 특정 세력의 집요한 방해가 선거 신뢰를 무너뜨려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반면 이날 선관위는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10월 국정원 등이 실시한 보안 점검에서 "북한의 해킹으로 인한 선거시스템 침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앞서 4·10 총선 전 "국정원으로부터 북한 해킹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면서 자료 제출을 거부하다 IP주소와 같은 핵심 정보를 모두 삭제한 뒤 국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선관위는 이날 추가 보도자료를 통해 "부정선거에 대한 강한 의심으로 인한 의혹 제기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과 다름없다"며 "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제기된 부정선거 주장은 사법기관의 판결을 통해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현행 선거관리시스템은 공격자가 의도하면 개표 결과값을 조작할 수 있는 구조로 내부망 보안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정원 조사에 이어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점검에서도 개인정보 보호 조치가 미흡한 점이 밝혀졌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제기한 선관위 선거시스템 해킹 의혹은 기존 극우 유튜버들의 사전투표 음모론과는 궤가 다르다. 기존 극우 유튜버의 부정선거 의혹은 투표소 곳곳에서 사전에 기표된 투표용지가 발견 됐고 조작된 투표용지 상당수가 진짜와 바꿔치기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투표소엔 야당뿐 아니라 여당 관계자도 개표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윤 대통령이 제기한 선관위 의혹은 단순한 부정선거 의혹이라기보다는 정부의 해킹 위험 점검을 거부한 선관위의 태도를 정조준하고 있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장된 것일 뿐 해킹이나 시스템의 안정성 점검을 거부하는 명분으로 삼을 순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국내 선거 관리 조직은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을 겸직하고 각급 법원장이 시도 선관위원장을 맡는 구조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도 시군구 선관위원장이 된다.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관위원(9명) 중 호선(互選)으로 선출되는데 현직 노태악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출한 대법관이다.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을 보장 받는다. 하지만 독립성은 외부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이지 국가 보안 점검을 무조건적으로 차단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게 윤 대통령의 주장이다.
게다가 지난 7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정족수 미달로 부결되기 하루 전 한국산 개표기를 사용한 루마니아에서 부정선거가 확정되며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결과를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명령한 사건이 눈길을 끌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12·3 비상계엄 해제 이틀 후 민주당이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강행한 것을 지적하며 "비상계엄의 명분을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공세를 펼쳤다. 선관위가 내부 직원의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거부한 것이 정부와의 갈등 시작점이었고 이 갈등 끝에 지난해 10월 국정원의 선거시스템 부분 점검이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서 해킹에 노출된 시스템의 취약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규현 전 국정원장이 인사파동에 휘말려 퇴임하면서 김준영 방첩센터장 낙마와 함께 사실상 무력화됐던 국정원 수사의 바통을 군 계엄사령부가 이어받은 것"이라며 "북한 해킹에 노출된 선거관리시스템은 국민의 투표권과 민주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