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 불시착한 DDP
[손웅익의 건축 마실] 관점에 따라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건축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아쉬운 DDP 디자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서 있는 자리는 과거 동대문야구장과 축구장이 있었다. 고등학교 야구가 인기 절정일 때 동대문야구장 주변은 관람객으로 인산인해였다. 결승전이 열리는 날에는 입장권을 사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암표상들 덕분에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동대문야구장과 축구장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흥인지문에서 광희문으로 연결되는 한양도성을 다 허물어 버리고 축구장, 야구장을 만들었다. 1925년 만들어진 운동장은 80여 년이 지난 2006년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플라자 추진으로 철거되고 소위 DDP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DDP는 국제현상설계 공모로 진행되었고 이라크 출신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그 현상공모에 참여한 국내 건축가 중에는 운동장 부지를 관통하던 한양도성을 복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에 한양도성 복원을 작품에 반영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선정되었고, 당시 건축계에서는 심사 과정에 대한 괴소문이 떠돌았다.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당선되고 나서도 수많은 설계변경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완료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그 외관은 선뜻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다는 조롱을 하기도 했다. 자하 하디드는 2014년 DDP 개관 2년 후에 사망했으니 DDP는 그녀의 유작이라 하겠다.
올해 개관 10주년 행사의 하나로 자하 하디드 아키텍처의 수석 건축가인 크레이그 카이너가 내한했다. 그가 현상공모 당선 후 DDP의 실시 설계를 주도한 모양이다. 완공된 지 10년 만에 그가 DDP 앞에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를 회상하며 양손을 옆으로 들고 서 있는 자세는 어색하고 그의 인터뷰 기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그는 “DDP의 매력은 우아한 곡선이 특징인 건축물이다”고 했다. 실제 ‘곡선의 여왕’이라는 명성답게 자하 하디드의 작품들을 보면 부드러운 물결처럼 우아한 곡선이 많다. 문제는 유독 DDP만이 우아한 곡선이 아니라는데 있다. 아니 우아함과는 아주 먼 거친 파도 같은 곡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거대한 파도 아래 서면 곡선이 갑자기 무서워지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DDP의 흥행을 예상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아주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천문학적인 공사비를 투입하는 작품을 설계하면서 ‘흥행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10년 만에 DDP 앞에서 웃으면서 자복하고 있는 것이다.
강북의 요지이며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으면서도 수년 동안 DDP는 텅 비고 썰렁한 공간이었다. 덮쳐오는 파도 같은 곡선 구조물은 부담스럽고, 지하 광장을 가로지르는 노출콘크리트의 거대한 복도는 비인간적인 스케일인 데다가 흉측하기도 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도대체 어디를 걷고 있는지 헷갈리게 해 놓은 미로 동선을 헤매는 듯해서 짜증을 유발한다.
DDP가 이렇게 된 것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었으니 프로젝트가 넘쳐나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DDP 개관 당시 내한해서 그녀가 했던 말은 스스로에게 한 참회의 독백으로 들린다. “당신이 건축을 하면서도 괜찮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당신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예요.”
물론 내 생각과 배치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건축은 관점에 따라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 하나쯤은 우리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의견에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불시착한 우주선’이라면 이제 자기의 고향 별로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