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예산 불사" 野의 예산 대수술···감액 딴지 거는 與 자충수
예산 불복 이유로 '비상계엄' 벌여놓고도 '감액'이 '협박'이라는 여당 통치력 상실 추경 메시지 성급···정국 안정 우선둬야
야당의 감액만 반영된 총지출 673조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지난 10일 국회는 2025년도 예산안을 상정해 재석 278명 중 찬성 183표, 반대 94표, 기권 1표로 의결했다. 당초 677조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이 깎인 수정안이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단독 수정을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예산안은 법안과 달리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민주당의 수정안 확정은 준예산 사태를 불사한 성공적인 전략으로 해석된다.
입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회에 감액만 권한이 주어진 것은 무분별한 예산 증액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감액은 국회 권한이지만 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해 매년 여야간 협의 끝에 최종적으로 예산안을 확정해 왔다.
헌법 제54조 3항에 근거한 준예산은 국회에서 새해 예산이 통과되지 못하는 국회 마비 상황을 가정한 것인데 지난해에도 정부·여당의 증액 예산을 통과시키는 벼랑 끝 전술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갑작스레 비상계엄을 밀어붙이며 민주당 내부에서도 '준예산'보다는 차라리 '감액 예산안' 처리가 낫겠다는 강경론이 득세했다.
탄핵 정국이 본격화된 이상 예년 같은 심도 있는 예산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고, 결국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협상 시한으로 정한 10일 감액 예산안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감액 예산안을 그대로 확정하는 것은 협박 수단"이라고 주장했지만 비상계엄이 민주당 예산안 무산을 위한 조치로 해석되면서 막판 증액 협상 시도는 설득력을 잃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 3000억원 증액을 포함해 총 1조8000억원을 증액하고, 예비비 등 1조6000억원은 복원하는 등 총 3조4000억원 예산 증액을 제안했지만 민주당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대외신인도 유지와 경제안정을 위해 예산안의 조속한 확정이 필요하다"고 맞섰으나 사용처가 불명확한 정부 예비비를 고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개혁신당 이주영·이준석 의원도 같은 논리로 반대표를 던졌지만 거대 야당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내년 예산은 정부안에 대비 △예비비(2조4000억원) △국고채 이자 상환(5000억원) △검찰 특정업무경비(506억원)와 특수활동비(80억원) △대왕고래 프로젝트(497억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활비(82억5000만원) 등이 삭감된 안건이 통과됐다.
민주당은 앞서 삭감을 예고했던 전직 대통령 경호예산, 대통령실 공무원 급여 등 7000억원 예산은 그대로 뒀다. 민주당 정책위의회는 "감액 중심의 예산안으로 국채발행 규모를 3조7000억원 줄여 재정여력이 확보된 만큼, 이를 통해 향후 정부가 민생경제에 필요한 사업에 대해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동연 경기도 지사도 "확대 재정을 못한 것이 아쉽다"며 "빨리 추경 예산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다만 일각에선 감액안 통과와 추경을 연결하는 것은 성급한 메시지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번 예산안에서 대폭 삭감된 예비비의 경우 통상적 규모보다 웃도는 수준으로 책정됐기에 감액이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적을 것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통치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정국 혼란을 조속히 정리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