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 더봄] 딥페이크 성범죄는 일상을 위협한다

[손민원의 성과 인권] 여성의 신체를 상품으로 소비하고 대상화 젠더 폭력···참여자들 성범죄로 인식 안해 피해 당사자가 나라면, 내 여동생이라면?

2024-12-05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2024년 8월 딥페이크에 관한 사건이 봇물 터지듯 기사화되고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 대한 공포가 한국 사회에 불안과 공포를 만들었다. 2024년 3월에는 서울대 졸업생들이 동문 여학생들의 얼굴을 합성한 성적 영상물을 만들어 반포하는 범죄가 있었다. 피해자는 경찰이 수사해 주지 않자 직접 언론에 제보하면서 이 사건이 가시화됐고, 이를 계기로 수많은 딥페이크 범죄가 기사화되는 계기가 됐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모두가 클릭 한 번으로 불법 합성물을 만들고 편집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IT 강국 한국 사회는 2020년 26만명이 가담한 텔레그램 성 착취방으로부터 22만명이 가담했다는 2024년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온라인상에서 거대한 성 착취는 일상을 불안과 공포로 밀어 넣고 있다.

IT 강국 한국 사회는 2020년 26만명이 가담한 텔레그램 성 착취방으로부터 22만명이 가담했다는 2024년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온라인상에서 거대한 성 착취는 일상을 불안과 공포로 밀어 넣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딥페이크’라는 것은 2017년 레딧(Raddit)의 익명 사용자(user)가 유명인의 얼굴을 포르노와 합성, 유통해 퍼뜨렸고, 이후 FakeApp과 같은 앱이 등장하면서 프로그래밍 프로세스가 단순화되고 대중화해 확산됐다.

성폭력 딥페이크는 올해 처음으로 발생하고 등장한 것이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의 첫 번째 단계는 길을 걸어가는 사진, 잠을 자는 가족사진, 지인의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는 일로 시작됐다. 이렇게 찍힌 사진은 여러 명이 있는 SNS에서 전시되고, 외모를 품평하며 성희롱적 댓글이 달리고 그 댓글에는 피해 당사자의 이름 혹은 전화번호 혹은 주소 등 신상정보가 같이 게시됐다.

우리는 이를 ‘지인 능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런 특정인 혹은 지인의 사진에 성관계 영상물을 붙여 합성하는 2차 가공물이 딥페이크 범죄물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합성된 성관계 영상 또한 피해 촬영물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렇게 2차 가공된 합성물의 피해자는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너의 영상물을 봤다”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고 비로소 피해자가 된 것을 알게 된다.

이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물은 소비자가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돈벌이하는 제작자와 유통업자가 또 존재한다. 2020년 텔레그램 사건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낚시하고 돈을 버는지가 잘 드러났다.

서울대 사건의 가해자는 “학업, 진로, 연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보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의 도구가 내가 알고 지내는, 내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료이자 후배의 얼굴을 지닌 불법 영상물이라니⋯. 다음 날 실제 그 피해 당사자를 볼 때 어떤 모습으로 그 피해자가 보일까를 상상한다면 가위 공포스럽다.

AI로 생성된 성적 미디어, 딥페이크 비디오, 합성 미디어와 사이버 포르노 등은 여성의 신체를 상품으로 소비하고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젠더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챗GPT

AI로 생성된 성적 미디어, 딥페이크 비디오, 합성 미디어와 사이버 포르노 등은 여성의 신체를 상품으로 소비하고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젠더 폭력이라 할 수 있다. 단체방 참여자들은 이런 행위를 성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경각심 없이 장난으로 혹은 더 멋지게 만들어줬다고 가볍게 즐기는 모양이다. 당사자가 모르는 이 범죄를 어떻게 놀이로 가볍게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이 나라면? 내 여동생이라면? 불법 합성된 딥페이크는 범죄행위다.

2024년 9월 26일 성적 허위 영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하는 것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딥페이크 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강화도 당연히 따라야겠지만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이라서,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외모를 품평하고 웃고 그것에 동조해 주고⋯.

누군가의 몸을 소비하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회문화라면 언제든 우리는 공포스러운 성범죄를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범죄를 가능하게 한 우리 사회의 문화에 대한 반성도 함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