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열정과 연습 그리고 밤양갱 하나에 담은 꿈
유니버설발레단 <호두까기인형> 주역 발레리나 전여진
클래식에 조금 관심있는 팬들이 요즘 들어 연말이면 꼭 챙겨보는 클래식 공연 3합이 있다.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과 함께 정통 클래식 발레인 <호두까기인형>이 그것이다.
<겨울나그네>는 실연 후의 여정을 담은 낭만 연가곡이고, <라 보엠>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배경인 서정 오페라이며, <호두까기인형>에는 우리의 꿈과 추억이 담겼기에 한 해를 보내는 즈음에 의미와 재미를 모두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 그런 듯하다.
올해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 주역 중 화제의 주인공은 발레리나 전여진이다. 발레단은 무용수의 연차와 수준에 따라 계급이 뚜렷한 조직이다. 대부분의 공연에서 주역은 수석무용수가 맡는다. 그런데 최하등급인 ‘코르드발레’에서 올해 한 등급 올라 ‘드미 솔리스트’가 된 그가 이번 공연의 주역을 꿰찼다. 첫 눈이 내린 지난 27일, 폭설을 뚫고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그를 만났다.
어릴 적 집 근처의 발레학원에 다니다가 이제는 라이징 스타가 된 발레리나 전여진.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친근한 말투로 쾌활하게 대화를 여는 그의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매너로 인해, 인터뷰가 아니라 마치 수다를 떨 듯 대화가 이어졌다.
- 갈고 닦는 노력과 타고난 재능 중 어느 것이 발레리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두 가지를 모두 갖추면 정말 좋은데 그런 경우는 드물다. 재능이 있으면 보다 편하고 테크니컬하게 춤을 출 수 있다. 그런데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노력형이더라. 주어진 재능이 아니기에 수없이 고민하고 연습을 반복하며 노력하는 가운데 창조하는 그 무엇이 있다. 그 노력에서 나온 춤과 연기는 오래간다는 것을 선배들을 보며 느낀다.”
- 수없이 뛰고 돌며 연습하다 보면 다치기 쉬운데, 어떻게 관리하는가?
“나는 철저한 노력형이라 수없이 뛰고 도는 연습을 하는데, 스트레칭과 워밍업을 연습 전후로 많이 한다. 보통의 관리는 하지만 특별히 신경 쓰지는 않는다.”
-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 드나?
“많이 부족하지만 나의 춤사위가 음악과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발씩 나아가는 중이다. 얼마전 공연한 <라 바야데르>의 감자티를 연기할 때, 내가 음악을 느끼며 스스로 배역을 즐기고 있음을 처음 느꼈다. 그 순간 정말 행복했다.”
- ‘발레는 신체로 디자인하는 예술’이어서 테크닉만큼 표현력이 중요할 텐데, 이를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이 있나?
“관객들이 박수치며 환호하는 턴과 점프 등 테크닉이 중요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수준까지는 좋아진다. 그런데 표현력은 정말 노력만으로 안되는 것 같다. 다행히 테크닉이 부족한 나에게 그런 재능이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게 되면 외국의 동영상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고 그대로 흉내내기보다는 나만의 필feel을 표현하려 고민한다. 발레마스터와 상의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 무용수들은 이슬만 먹는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는데, 평소 식사와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깔깔 웃으며)얼마전까지는 다이어트한다고 엄청 적게 먹었는데, 요즘은 치킨이나 라면을 가리지 않고 즐겁게 많이 먹는다. 파스타도 좋아하고 달디단 디저트에 밥까지… 그리고 먹은 것을 모두 소화시킬 때까지 연습을 거듭한다. 예전에는 피트니스를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지금은 무조건 발레 연습을 죽어라 한다. 그것이 내 신조이기도 하다.”
- 처음 주역을 맡은 <호두까기인형> 2막은 발레 테크닉이 피크인데, 제일 공을 많이 들이는 장면은?
“커플인 드미트리의 눈 연기는 파트너 입장에서 설렌다. 솔로에서 무대를 원형으로 크게 도는 마네쥬를 잘하려 하고, 특히 푸에테(한쪽다리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팽이 채찍질하듯이 몸을 회전하는 동작. 보통 32회전을 함.)에 신경을 집중해 연습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매 장면마다 완벽한 왕자와 공주의 모습을 느끼면 좋겠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을 묻자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지젤>을 언급한다. 클래식 발레에 강점이 있는 유니버설발레단을 선택할 만큼 클래식 발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쟁이다. 어릴 때부터 정말 하고 싶었다는 역할, 그의 매력이 넘치는 지젤을 벌써 보고싶다.
연말이면 발레 <호두까기인형>를 여러 곳에서 공연하는데, 특히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관객에게 커튼콜의 매력을 보여준다. 공연이 끝나면 핑크빛 조명을 비춘 무대에 캐롤이 울려 퍼지며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가 새겨진 장치가 내려온다. 흩날리는 눈송이와 함께 캐롤을 부르며 모든 출연진들이 왈츠를 추는 정겹고 따뜻한 송년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장면은 유일하게 일반인 촬영이 가능하며, 관객과 출연진이 하나되는 행복한 장면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2월 19일~12월 30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