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시설 어르신 86.8% '중추신경계용 약물' 복용···전문가 "약물남용, 돌봄 악순환 초래"
건보공단, 추계학술대회에서 연구결과 발표 시설수급자가 재가수급자보다 복용률 높아 항정신병제 연간 28일 이상 복용률 50.7% 전문가 "약물 없이 조절 가능한 증상 있어"
장기 요양시설 서비스를 이용하는 어르신 10명 중 8명은 마약성진통제·수면진정제·항정신병제 등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요양시설의 인력·전문성 부족으로 어르신들의 약물 조정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장기 요양 수급자(시설수급자 18만7077명, 재가수급자 70만4109명)를 대상으로 중추신경계용 약물 사용 현황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지난 25일 발표했다.
장기 요양 서비스는 스스로 일상생활이 곤란한 65세 이상 노인이나 65세 미만이더라도 치매·뇌혈관성 질환·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간호·목욕 등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다. 시설급여 수급자는 요양시설에 입소해 신체활동 지원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재가급여 수급자는 가정에서 간호 등의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장기 요양 서비스 이용자 중 연간 1일 이상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복용한 환자는 79.2%였다. 장기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이용자는 86.8%, 자택에 머무는 이용자는 77.2%로, 시설수급자의 비중이 9.6%포인트 높았다. 연간 28일 이상 중추신경계용 약물 복용자 비율은 시설수급자가 76.7%로 재가수급자(56.6%)에 비해 20.1%포인트나 높았다.
연간 1일 이상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복용하는 시설수급자가 가장 많이 복용하는 약물은 마약성 진통제(57.6%)였고, 항정신병제(53.2%)가 뒤를 이었다. 연간 28일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시설수급자는 항정신병제(50.7%), 항우울제(33.3%) 순으로 많이 복용했다.
건보공단은 대부분 환자가 항정신병제를 장기간 복용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설수급자의 마약성 진통제 연간 28일 이상 복용률은 27.3%로, 연간 1일 이상 복용률(57.6%)보다 크게 낮았다. 반면 항정신병제는 1일 이상 복용률(53.2%)과 28일 이상 복용률(50.7%)에 큰 차이가 없었다.
시설수급자는 항정신병제 사용률이 높다 보니 서로 다른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병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항정신병제와 항우울제의 병용은 15.3%, 항정신병제와 항불안제의 병용은 10.2%의 환자에서 관찰됐다. 한 환자에게 서로 다른 약물군이 각각 180일 이상 처방된 경우를 병용으로 봤다.
이정석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약성진통제·항정신병제·항불안제·수면진정제·항우울제 등 중추신경계용 약물은 중독과 의존, 낙상 및 골절 위험, 인지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세심하게 투약하고 상태를 관찰하여 조정해야 하는 약물이지만 장기 요양시설의 인력과 전문성 부족으로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변진옥 건강보험연구원 보험정책연구실장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장기 요양시설 수급 노인의 중추신경계용 약물 복용률이 31.7~78% 수준인 외국에 비해 높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 요양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장기 요양 현장에서는 시간과 인력뿐 아니라 관련 지식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대부분의 경우 약을 많이 처방해서 빨리 주무시게 하거나 멍하게 해 못 움직이게 하는 등의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드시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와 돌봄만으로 충분히 조절 가능한 증상을 구분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약을 쓰면 몽롱해져서 정상적이던 신체 기능마저 오히려 떨어지게 돼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돌봄의 양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교육받아서는 치매를 비롯한 어르신들의 질환을 이해할 수 없다. 이후에도 보수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여성경제신문에서는 제3회 해미백일장을 공모하고 있습니다. 요양보호사의 애환과 보람과 감동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환자를 돌보며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해미백일장에 요양보호사님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아래 포스터를 클릭하면 응모 페이지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