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더봄] 한국인만 먹는 게 아니었어?···인류사 가장 오래된 조미료 '젓갈' 이야기

[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고대 로마인의 값비싼 교역 물품 동남아시아의 피시 소스(fish sauce) 유럽의 엔초비와 수르스트뢰밍

2024-11-27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

올해는 여름에 날씨가 늦게까지 더워서 배춧값이 너무 비싸 김장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나도 김장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김치가 있어야 반찬 걱정 없이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김장하기로 결심했다.

배추를 절이고 무와 각종 양념거리를 다듬어 김칫소를 만들고 배추 한겹 한겹 양념을 발라 속을 채우는 과정이 정말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김치냉장고 가득 김치를 담아놓으면 1년 내내 든든하다.

김치 양념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재료 중에서도 젓갈은 우리 한식에 없어서는 안 될 조미료다. 김치 양념에도 젓갈이 들어가야 그 풍미와 감칠맛이 더해진다.

젓갈은 원래 동식물성 단백질 식재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음식으로 다양한 요리에 풍미를 더하기 위한 조미료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젓갈이 그대로 반찬이 되기도 한다. 보통 젓갈은 해산물을 발효시킨 것으로 생각하지만 고기를 발효시킨 육젓과 콩을 발효시킨 두장(豆醬) 역시 넓은 의미로 젓갈이라 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젓갈은 냉장 냉동 시설이 발달하기 이전에 상온에서 식재료 보존이 어려웠던 시절 상하기 쉬운 생선을 저장하는 요긴한 방법이었다. 또한 이렇게 발효시킨 젓갈은 감칠맛을 더해줘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게 되면서 순식간에 각국의 식문화를 점령하게 되었다.

이렇듯 젓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김치의 감칠맛을 더하는 새우젓

고대 로마인의 주요 교역 물품

기원전 500년 고대 그리스에선 생선으로 담근 젓갈 가론(Garon)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젓갈을 만드는 방식은 로마 제국의 가룸(Garum)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젓갈은 학자 세네카의 편지에도 등장할 만큼 식생활에 뿌리내려졌으며 이탈리아의 고대국가 폼페이 유적에서도 가룸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가룸은 소금에다 등푸른생선을 통째로 층층이 쌓아 발효시킨 후 생겨난 액젓으로 고대 로마인의 아주 값비싼 주요 교역 물품이었다.

동남아시아의 피시 소스(fish sauce)

동남아시아의 피시 소스 /https://smartstore.naver.com/wfood/products

동남아시아 피시 소스의 원류는 동남아시아 메콩강 유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느억맘이나 태국 남쁠라 등이 가장 널리 알려진 피시 소스의 종류이다. 라오스식 생선 식해인 빠솜과 캄보디아의 프라훅도 생선 젓갈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 즐겨 먹는 느억맘은 작은 멸치나 까껌(cacom)이라는 생선을 염장 후 발효시켜 만든 베트남 전통 소스로 일반적으로 음식을 만들 때 간을 맞추기 위한 기본 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샐러드에 곁들이는 드레싱 소스나 음식을 찍어 먹는 디핑 소스로도 널리 이용된다.

태국의 남쁠라는 멸치 이외에 오징어, 정어리, 고등어, 청어, 잉어 등을 1년여 발효하여 만든 젓갈로 국이나 볶음, 무침 등의 간을 맞추는 데도 사용된다.

유럽의 엔초비(Enchovy)와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

한국에 멸치젓이 있다면 유럽에서는 엔초비라는 젓갈을 주로 사용한다. 엔초비는 유럽 멸치나 청어류의 물고기를 이용한 서양식 젓갈로 생선 살과 내장 등을 이용한 것도 전반적으로 통틀어 앤초비라 말한다. 엔초비는 피자나 파스타에 사용하기도 하고 시저샐러드의 드레싱에도 사용한다.

스웨덴에서 유명한 수르스트뢰밍은 세계 최악의 악취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청어를 삭힌 통조림인 수르스트뢰밍은 적당히 삭은 청어를 꺼내서 물로 한번 씻어 악취와 염분을 어느 정도 뺀 후 버터, 붉은 양파, 감자와 싸서 먹거나 스웨덴식 치즈의 일종인 베스테르보텐(Västerbotten)을 곁들여 먹으면 감칠맛이 일품이다.

유럽에서 즐겨 먹는 엔초비 /https://smartstore.naver.com/j_prestige/products/6280335720

이렇듯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조미료인 젓갈은 단백질이 발효를 거치면서 감칠맛을 내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발효과정에서 화학적으로 단백질이 맛을 내는 성분인 아미노산염, 핵산염, 유기산염 등으로 변화하는데 인류가 경험에 의해 이러한 과학적 원리를 찾아낸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조미료인 젓갈은 세계인에게 단백질 공급원이자 음식에 풍미를 더하는 귀중한 식재료로 사랑받아 왔다. 적은 양으로도 음식의 풍미와 감칠맛을 더할 수 있는 젓갈은 그야말로 식탁의 보배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