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이런 탁구장 또 있나요?

[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내 생애 가장 인간미 넘치던 탁구장에서 먹거리 잔치는 또 다른 재미였다

2024-12-25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어느 일요일, 압력밥솥에 닭 두 마리를 넣고 불린 찹쌀(삼베 주머니에 넣음), 한약 재료, 마늘, 파, 양파, 대추, 커피, 소주 등을 넣고 삼계탕을 끓였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삼계탕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목젖이 반응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따뜻한 삼계탕을 차에 싣고 탁구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열심히 가르쳐주신 코치님과 탁구 파트너가 되어주신 고수분들께 내가 직접 만든 삼계탕을 대접하고 싶어서였다.

푹 익어서 젓가락으로 살살 찢어지는 닭고기, 말랑말랑한 찹쌀밥, 시원한 국물은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삼계탕 전문점에서 파는 것보다 더 국물이 시원하다며 찹쌀밥을 말아 연신 입으로 가져갔다. 한약 재료와 쌍화탕을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았다.

어느 숙녀(?)는 닭고기는 먹지 않는다며 뒤로 물러앉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한 숟가락 떠서 국물 맛을 보더니 바싹 다가앉아 국물 한 그릇을 퍼서 후루룩 마셨다. 그녀는 나에게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며 처음으로 삼계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며 고마워했다. 닭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서 먹을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탁구장은 그야말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회원들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와서 같이 먹곤 했다. 그중에서 지금도 집에서 가끔 해먹은 것이 있는데 바로 고추전이다. 재료는 청량고추와 밀가루뿐이다. 매운 고추를 잘게 다져서 밀가루 반죽에 섞어 한입 쏙 들어가는 크기로 전을 부치는 것이었다.

한입 크기의 고추전 /사진=김정희

탁구장을 오래 다닌 여자 회원이 해 오셨는데 남자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입에 착 달라붙는다며 앙코르(?)를 청해서 한 번 더 맛볼 수 있었다. 앗쌀한 매운맛, 그것이 고추전의 매력이었다. 전은 부쳐서 바로 먹는 게 맛있다며 탁구장 베란다에서 고추전을 부치는데 고소한 기름 냄새와 매콤한 냄새가 코를 벌렁거리게 했다.

회원들은 우르르 베란다로 몰려가서 부쳐내는 대로 쪽쪽 입으로 가져갔다. 뜨거운 전은 말린 혀 사이에서 어지러움을 느끼며 맴맴 돌다가 이 사이에서 잘게 부서졌다. "맵다 매워"라는 말이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 후렴구처럼 퍼졌다. 묘한 매운맛이 사람의 미각을 매혹시켰다.

가끔 코치가 준비하는 수육도 인기 만점이었다. 된장과 마늘을 듬뿍 넣은 수육을 삶은 날에는 구수한 된장 냄새와 함께 폴폴 익어가는 돼지고기 냄새에 베란다로 통하는 여닫이문이 덜거덕덜거덕 몸살을 앓았다. 수육 삶을 때는 40분. 코치가 강조한 이 시간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베란다로 나가 불을 조절했다.

수육을 삶을 때에는 꼭 커피 알갱이를 넣어야 한다며 커피믹스 끝부분을 잡고 흔들던 코치. 그날에는 상추, 깻잎, 마늘, 오이, 당근, 고추 등을 회원들이 가져와서 상추 한 잎, 고기 한 점, 마늘, 고추를 얹어 쌈을 싸서 있는 대로 입을 벌리고 오물오물하며 삼켰다.

그땐 절대 말을 걸면 안 되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이 소리만 웅웅거렸기 때문이다. 결국 입안에 든 음식물을 다 삼킨 후에 정확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절대 웃기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었다. 입에 꽉 찬 음식물로 두 볼이 빵빵해지는 순간, 분수가 물을 뿜어내듯이 마주 앉은 상대방에게 음식물 세례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주 보며 맛있게 먹다가 상대방을 향해 음식물 세례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길··· /픽사베이

주말이면 종종 삼겹살 파티도 했다. 누군가 알아서 고기를 사 왔고('다음에는 내가 고기 사 올께요'라는 사람이 꼭 있었다) 먹고 나면 누군가 주섬주섬 설거지할 그릇을 챙겨 수돗가로 가져갔고 또 누군가는 알아서 뒷정리했다. 다 먹은 후에는 커피믹스 한 잔으로 기름칠해진(?) 위를 청소했다.

여름에는 수박 파티가 열리고 가을이면 주말농장 하시는 분이 고구마를 삶아왔다. 겨울엔 붕어빵이나 국화빵을 사 오는 분이 계셔서 탁구장의 분위기는 늘 따뜻했다. 코치님이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회원들 간 사이가 좋아 서울 서쪽 끝, 대중교통이 불편한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회원들이 많았다.

사정이 생겨 탁구장을 옮길 때면 옮긴 장소로 따라가는 회원들이 많았다. 초보자들은 고수들이 많아 탁구 실력 향상하기 좋았고 고수들은 고수끼리 신나는 게임을 할 수 있어 탁구장은 늘 시끌시끌했다.

한 달에 한 번 탁구 게임이 열리면 마지막 결승전에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흥분되기도 했다. 보는 사람도 재미있고 경기하는 사람도 구경꾼이 많아서, 거짓말 살짝 보태면 올림픽 경기 보는 듯 짜릿짜릿했다.  

"와~", "휴~" 소리가 여러 번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바탕 게임을 하고 난 뒤에는 1등부터 3등까지 탁구공이나 양말 등을 선물로 받고 먹거리로 하루를 마감했다.

내가 다닌 탁구장 어느 곳에서도 이런 탁구장은 구경할 수 없었다. 그곳은 탁구장 뒤가 밭이었고 작은 개인주택 몇 채가 있는 조용한 시골 같은 동네였다. 나는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그곳에서 탁구의 기본 동작 중 하나인 포핸드 스트로크를 제대로 몸에 익혔다. 그곳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꼈다. 다음 시간에는 그곳 회원들의 재미있는 특징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