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화'만 있고 '소통'은 없어···아쉬웠던 담화
"국민은 대통령이 뭘 사과했는지 어리둥절해" 140분 동안 27개 질문에 응답해 '좋은 시도' 외신 기자에 "말귀 못 알아듣겠다" 태도 논란
"흔히들 사과를 할 때 갖춰야 할 요건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어떤 부분에 대해 사과할지 명확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대통령께서는 대국민 담화에서 '제 주변의 일로 걱정과 염려를 끼쳐드렸다'라며 다소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으로 사과했다. 기자회견에서도 명태균 씨와 관련해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휴대폰을 바꾸지 못해서라든지, 사람 관계에서 모질지 못해서라고 말씀했다. 회견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대통령이 뭐에 대해 사과했는지 어리둥절해할 것 같다"
7일 대통령실 기자회견에서 부산일보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실상 담화에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 의식이 담긴 질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논란이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국민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특히 이번 담화는 140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 27개나 되는 질문을 받았다. 좋은 자리를 만들고 긴 시간동안 담화에 응한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담화의 성과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이번 대국민 담화에는 '질의'만 있었을 뿐 소통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 담화의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한 것이다. 소통은 서로의 뜻이 통해 오해가 없고 막힘없이 대화가 이뤄진다는 걸 의미한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국민은 대통령이 명태균 씨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을 속 시원히 설명해 주길 원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통은 결국 참여하는 사람이 대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담화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진정성 있는 답변이 나올 것이고 예의 있고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낮은 지지율과 잦은 논란 속에서 이번 대국민 담화가 가지는 의의는 크다. 적어도 국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국민 담화에 참여한 기자들도 이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사실상 국민이 궁금했던 바를 대신 질문하는 역할을 맡은 그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서도 품위와 예의를 지켰다. 외신 기자는 정성스레 한국어 질문을 준비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사과는 무엇을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지 불분명했다. 외신 기자의 질문에는 "말귀를 못 알아듣겠다"고 말했다. 외신 기자 쪽은 "(질문을) 열심히 준비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야만 했다. "앞으로 부부싸움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미쳤냐, 잠 안 자고 뭐 하냐" 같은 발언들도 대국민 담화가 가지는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웠다. 대변인을 향한 반말은 덤이다.
아쉬운 사과와 가벼운 태도와 말투로 사과의 진정성을 전하는 데 실패했고 대국민 담화라는 좋은 기회를 살리는 데 실패했다. 이는 결국 대국민 담화를 '왜' 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대화'가 '소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대화 참여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윤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는 소통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대통령실 참모는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