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바보야, 경제와 히스패닉이야!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트럼프 압승으로 하원 장악도 유력해져 '노스트라다무스' 릭트먼 교수도 틀렸다 침체 아닌 건 맞지만 인플레이션율 간과 히스패닉 지지율 4년 전보다 14%P 올라 해리스 낙태 이슈 집중했지만 반향 적어

2024-11-11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제47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공화당은 상원을 장악한 데 이어 하원 장악도 유력해졌다. 명실상부한 일방적 승리다. 하지만 미 대선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거의 모든 언론이 예외 없이 종이 한 장 차이의 박빙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제47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AP=연합뉴스

심지어 워싱턴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던 아메리칸 대학교 역사학과 석좌교수인 앨런 릭트먼(Allan Lichtman)도 카멀라 해리스의 무난한 승리를 점쳤었다. 릭트먼 교수는 선거판을 좌우할 주요 포인트를 13개로 정리하고 그 가운데 여당 후보가 8개 이상에 해당하면 승리한다고 보았다. 릭트먼은 13개의 열쇠 이론을 바탕으로 1980년대 이후 한 번만 제외하고 모든 선거 결과를 정확히 맞췄다. 

릭트먼은 13개 열쇠 가운데 해리스가 가지지 못한 것으로 4개를 언급했다. 여당이 중간선거에 패해 하원을 장악하지 못한 점, 해리스가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 외교 및 군사 부문에서의 실패, 해리스의 카리스마 부족 등이 그것이다. 

그밖에 해리스가 첨예한 당내 경선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 위협적 제3당의 부재, 경기 침체의 부재, 양호한 중장기 경제성장, 심각한 정책 변경의 부재, 만성적 사회불안의 부재, 집권 행정부에 주요한 스캔들의 부재, 야당 후보의 카리스마 부재 등 8개 분야의 열쇠를 가졌다고 평가했다. 나머지 한 개의 열쇠인 외교정책 성공 여부는 중립 정도로 봤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충격을 받은 릭트먼은 당분간 쉬면서 자신이 틀린 이유를 탐색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확한 전망으로 인해 승승장구하던 그의 예상이 맞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엔 최소한 두 곳에서 릭트먼의 견해는 수정돼야 했다.

우선 경제전망이다. 릭트먼은 선거 캠페인 기간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지표상으로 보면 미국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릭트먼은 물가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단기 경제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를 반영하면서 물가 정도를 도외시하고 경기 침체 여부만 감안한 것이다.

만약 릭트먼이 물가가 전임 대통령들 재임 때보다 낮아야 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면 해리스는 결코 단기 경제에 대한 점수를 따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에디슨 리서치의 대선 출구 조사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32%의 유권자가 투표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소로 경제를 꼽았다. 이민과 낙태 문제라고 대답한 유권자는 각각 11%, 14%에 불과했다.

앨런 릭트먼 아메리칸대 역사학과 석좌교수의 유튜브 채널 캡처 /연합뉴스

릭트먼은 사회적 불안에 대한 분석에서도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 집권 기간에 대규모 시위나 약탈 같은 사회불안이 만성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국경 보호에 미숙하게 대처해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왔고 이들이 대도시로 몰려 치안이 불안해진 것은 사실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처가 해이해지면서 펜타닐 같은 마약성 약물이 광범위하게 퍼졌고 숱한 가정의 안정이 파괴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치안 불안 상태를 겪으면서 미국인의 70% 이상이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대거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릭트먼이 이 두 가지 사실을 심사숙고했더라면 해리스가 이길 것이라 예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고물가로 인한 경제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미국인이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수년이 지났다. 2021년 바이든이 막 집권했던 당시와 비교하면 소비자 물가가 평균적으로 20%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장바구니 물가는 더 올랐다. 매일 식탁에 오르는 계란값은 거의 두 배가 올랐고 시리얼과 빵값도 25% 상승했다. 월세도 꾸준히 상승해 미국 평균 월 아파트 렌트비가 1700달러를 넘어섰다. 연간으로 보면 2만 달러가 월세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는 1500달러를 어린이집 비용으로 매달 지출해야 한다.

이제 미국인은 연간 10만 달러를 벌어도 세금과 국민연금, 보험료 등을 내고 이런저런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저축하기가 빠듯한 실정이다. 주택을 구입하려면 집값의 20%를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를 빌려야 하는데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저축이 힘들어지면서 '내 집 마련'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아담한 내 집에서 오순도순 가족과 살아가는 '아메리칸드림'의 실현도 벽에 부딪혔다. 미국인의 좌절감은 그대로 투표 결과로 나타났다. 출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물가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저소득층이 대거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두 번째, 놀랍게도 46%의 남미계 히스패닉 유권자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이는 4년 전과 비교해 무려 14%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미국에서 백인에 이어 두 번째 많은 인구수를 가진 히스패닉 유권자 중 여럿이 민주당을 버리고 트럼프로 갈아타면서 이번 대선의 향배를 갈랐다.

미국에서 백인에 이어 두 번째 많은 인구수를 가진 히스패닉 유권자 중 여럿이 민주당을 버리고 트럼프로 갈아타면서 이번 대선의 향배를 갈랐다. /AP=연합뉴스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히스패닉 남성의 트럼프 지지는 더 충격적이었다. 이들은 해리스보다 많은 55%의 표를 트럼프에게 몰아줬다. 4년 전과 비교해 19%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더불어 트럼프의 인기는 흑인 유권자층에서도 1%포인트 상승했다. 4년 전과 비교할 때 흑인 남성 유권자 투표수의 2%포인트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갔다. 해리스가 흑인 후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학 학위가 없는 유권자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 6%포인트나 늘어나 경제 이슈가 선거를 지배했음을 보여준다.

해리스 진영은 낙태 이슈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선거 막판까지 여기에 올인하다시피 했지만 여성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는 오히려 올라갔다. 4년 전과 비교해 여성의 트럼프 지지도는 3%포인트 상승했다.

이런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유권자는 트럼프가 경제 이슈를 더 잘 다룰 것으로 판단했고 해리스의 정책 능력과 비전을 신뢰하지 않았다. 실제로 해리스에 대한 비호감도는 52%에 달했다. 트럼프는 유권자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냈고 해리스는 그렇지 못했다. 이제 트럼프가 관세 인상에 대하여 걱정하는 유권자의 바람도 읽어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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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