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정리를 잘해야 하는 나이

[송미옥의 살다보면2] 가는 날까지 내 몸을 남에게 안 맡기려면 많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무리했더니···

2024-11-03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살면서 가장 안 가야 할 곳이 병원과 감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건강하던 연예인의 급작스런 사망 소식이 뉴스로 전해진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기에 접어든 나 역시 황망함과 놀라움을 애써 감추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근간에 가까운 친척 어른도 아침밥 먹고 밭을 둘러보러 나가셨는데 점심때가 되어도 연락이 안 되어 찾아 나섰더니 밭 한가운데에 쓰러져 계시더란다.

나이가 들어도 혼자 화장실 다니고 활동하다가 가신 분들을 보면 요즘은 그게 참 부럽다. 가는 날까지 되도록 내 신체를 남의 손에 맡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러려면 많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어린 시절 엄마들은 어지간한 아픔은 표도 안 냈지만 변변한 약도 없던 옛날엔 심한 통증이 오면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며칠씩 끙끙 앓았다. 요즘은 집집마다 별별 비상약이 다 구비되어 가벼운 병과 상처는 집에서도 치료가 가능하다.

어른들의 약에 대한 의존도는 반찬 할 때 넣는 조미료만큼이나 남용이 심해 걱정이지만 나 역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약국에서 산 진통제 해열제 가벼운 감기약, 자식들이 사 보낸 건강 보조약까지 이 약 저 약 펼쳐 놓으면 약국의 한쪽 면은 채울 것 같다. 

고령인에겐 어지럼증이 치명적이다. 몸이 피곤하고 쇠약해지면 첫번째로  나타나 건강을 위협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주일은 무리했더니 몸살이 났다. 비상약을 꺼내 이것저것 내 맘대로 급 처방해서 먹어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 날 일터에서도 몸이 개운치가 않아 퇴근길에 가까운 병원에 가니 열이 너무 높아 응급실에 가보라고 권한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약만 처방받아 귀가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열은 내린 것 같은데 천장이 뱅뱅 돌았다. 화장실을 가는데 벽이 기우뚱거리더니 구토가 나고 순식간에 퍽 넘어져 설설 기어들어 와 누우니 이젠 팽이 돌 듯 방이 돈다. 나이가 드니 내 주위에 어지럼증으로 고생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엊그제도 달팽이관이 어쩌고 하며 어지러워 고생한 이웃 이야기를 무심히 들었다.

남이 아무리 아프다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내가 직접 겪으니 이건 정말이지 무섭고 두려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러다가 죽는가라는 두려움과 함께 전광석화처럼 스치는 ‘정리‘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같이 돌더라는 거다.

심호흡하며 벽에 기대앉아 첫 번째 응급 선생이 되어주는 스마트폰을 켰다. 어지럼증을 검색해 여러 종류의 증상을 읽으며 순위를 매겨본다. 내 경우는 뇌졸중이나 그런 부류의 증상은 아닌 것 같고 달팽이관의 이상 같기도 하고 고열로 인한 바이러스 침투? 이것도 의심이 간다.

어쩌면 과로로 인한 몸살이라 휴식을 취하면 시간이 지나 가라앉을 것 같다. 의사보다 더 유식한 환자가 되어 스스로 진단까지 끝냈다.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환자다.

요즘은 누구의 조언보다 스스로 검색해서 무엇이든 해결하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안정을 취하며 오전을 보내도 쉬 가시지 않는 어지러움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딸이 안부 전화했다가 내 목소리에 놀라서 온 가족이 달려왔다.

오늘은 휴일이니 푹 쉬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해도 훌쩍 커버린 손자들이 양손을 잡고 걸음마 시키듯 붙잡아 차에 태운다. 문고리만 잡아도 바가지를 쓴다는 응급실에 도착, 환자 침대에 누워 피 한 대롱을 뺀 후 젊디젊은 당직 의사가 다가와 이것저것 움직이라 하며 관찰한다. 잠시 후 피검사도 이상 없고 달팽이관 이상도 아니란다.

인터넷에서 본 증상을 설명하며 멀미약을 요구하는 내 얼굴을 밉살맞게 쳐다보며, 그건 당신 생각이고 CT와 MRI를 찍어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며 사진을 찍으란다. 내일 찍겠다고 하니 우르르 몰려와 검사 준비를 하던 간호사와 보조 의사가 모두 빠지고 하얀색 알약 한 알을 갖다준다.

멀미약이란다. 한 알을 삼키고 조금 누웠더니 괜찮아졌다. 몸을 추스르고 나오며 딸의 손에 들린 계산서를 보니 십만원이 훌쩍 넘는다. 이번엔 돈이 아까워 머리가 아파져 온다. 딸이 이 정도면 다행이라 조잘댄다. 애써 모른 척하지만 미안하다. 또 하나의 새 약봉지가 서랍 한쪽에 채워진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는 딸의 염려에도 퇴근 후 밭에 나가 밭 설거지를 했더니 몸이 또 노곤하다. 나이 드니 돈 욕심은 사라지고 소소한 일 욕심은 자꾸 커진다. 내 생각엔 정리한다는 핑계 같다. 자식 입장에선 말 안 듣고 고집 센 늙은 부모도 자식만큼이나 걱정거리, 골칫거리일 것 같다.